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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꺼내든 극단주의의 카드, 우리에게도 먹힐까?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12/31 [00:05]

트럼프가 꺼내든 극단주의의 카드, 우리에게도 먹힐까?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12/31 [00:05]

 

 

비번 날 새벽, 마음놓고 새벽에 일어나 인터넷을 좀 뒤지고 이것저것 들여다보다가 다시 깜빡 잠이 든 사이, 머리맡에 놔둔 아이패드로 메시지가 전송되어 오는 소리에 눈을 살짝 떴습니다. 들여다보니 우체국 수퍼바이저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었습니다.

“조, 오늘 여섯 개 라우트(배달 구역)가 다운됐어. 우리는 지금 히어로가 필요해.” 일을 나와달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던 셈인데, 과감하게 씹었습니다. “미안, 나 오늘 스케줄이 너무 많아. 오늘은 절대로 갈 수 없어.” 아마 평소같으면, 그리고 내게 정말 스케줄이 없었더라면 기꺼이 일을 나갔을 겁니다. 시간당 50달러에 달하는 오버타임 수당을 받으며 널널하게 일을 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내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던 겁니다. 정말 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약속된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침, 저는 지금 자동차 오일 체인지 서비스를 받으러 벨뷰라는 곳에 있는 자동차 딜러를 찾아왔습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린다고 해서 지금 여기 대기실에 앉아 커피와 쿠키를 즐기며 인터넷 서핑도 하고, 이렇게 글도 두들기고 있지요. 그러면서 기사 하나를 읽었습내다. 한겨레의 정의길 기자가 쓴 트럼프 약진의 이유, 그리고 앞으로 트럼프가 계속해 미국 정치에 끼칠 영향에 대해 쓴 기사였는데, 꽤 흥미로운 기사여서 링크를 걸었습니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미국 민중들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겁니다. 트럼프가 꺼내놓은 인종차별과 미국우선주의, 즉 새로운 고립주의가 미국 민중들의 마음을 건드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소수인종과 심지어는 성소수자들까지도 트럼프의 반이민주의, 고립주의에 동조해 표를 던진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글쎄요,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인 미국에서 백인우월주의와 인종주의라는 망령이 아직도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미국 땅의 메인스트림이면서도 자기 속내를 감추고 살았던 미국인들이 많았다는 것의 반영일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소수 민족들조차도 트럼프의 이같은 행태에 동조하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는 겁니다. 사실 저는 그런 모습을 이곳에 사는 한인 커뮤니티 안에서도 봤습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가 주장하고 있는 부정선거 논란에 찬성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자기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분들도 꽤 봤고. 무엇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혹시 자신이 이 사회의 메인스트림이라는 그런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이기에 그랬을까요?

제가 추측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정치에 대한 혐오가 트럼프에 대한 열광으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는 겁니다. 특히 엘리트주의에 대한 혐오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불만을 극대치까지 끌어올린 면이 없잖아 있을 겁니다.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후보로 만들기 위해 버니 샌더스가 가진 사회적 소구력을 무시했던 민주당은 그 대가를 혹독히 치러야 했던 셈이지요. 그 점을 명확하게 간파한 트럼프는 민중들이 가장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그들의 밑바닥에 자리한 경제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불만을 건드렸고, 그것이 그에 대한 열광적 지지로 나타났던 거라고 봐야겠지요. 이것이야말로 히틀러가 1차대전의 패배로 인해 엄청난 짐을 져야 했던 독일 민중을 하나로 묶어냈던 것과 가장 비슷한 점이었을 터이고.

바이든의 집권 이후 트럼프가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쪽이 많습니다만, 저는 꼭 그럴 거라고 보진 않습니다. 그렇지만 트럼프의 약진을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의 취약한 점도 눈에 더 띄게 되는 것 같아 그것이 좀 마음에 저어되긴 합니다. 윤석열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가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서 계속해 상위로 랭크되는 것도 그런 비슷한 점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코로나 판데믹 상황은 우리나라의 국력과 국격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주었으되, 이 상황이 지속되면서 민중들이 경제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입은 경우가 허다했고, 그것이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아졌지요. 그리고 그것은 한국 땅에서 일궈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훼손시킬 수 있는 가능성도 분명 존재합니다.

물론, 저는 촛불로 탄핵을 이뤄내고 새로운 정부를 세워 낸 한국 시민들의 저력을 믿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능하게 만든 유능한 집단지성들의 힘을 믿습니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한국의 시민들은 다른 나라에서 해 보지 못했던 만큼의 민주주의의 경험을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함께’ 쌓았고, 그것이 지금의 정부를 지켜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예를 보며 어떻게든 우리가 이뤄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허물려 하는 세력들이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고, 이들과의 싸움이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서로를 격려하며 극단주의가 주는 허상에 함몰되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를 기르며 우리의 힘을 모아낸다면 우리의 민주주의는 또다시 새로운 스테이지로 접어들게 될 겁니다.

커피를 두 잔이나 마셨는데, 새로 뽑은 커피를 갖다 놓았군요. 저는 시애틀 사람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 커피향이 이렇게 좋아서 또 한 잔을 따르는 걸 보면. 아무튼, 자동차 오일체인지와 타이어 로테이션을 마치고 나면 그 다음엔 어머니 차도 끌고 린우드라는 곳의 딜러샵을 찾아야 합니다. 오늘은 자동차들 맡기고 찾느라 바쁠 것 같네요. 어쩐지 커피도 그렇게 자주 마시게 될 거 같고.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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