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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나간 트럼프, 스스로의 발목을 잡다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1/01/09 [00:05]

너무 나간 트럼프, 스스로의 발목을 잡다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1/01/09 [00:05]

 

점심시간, 항상 오는 한 친절한 손님의 집 포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마스크를 밥 먹느라 잠시 벗었더니 겨울과 봄이 섞여 있는 듯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힙니다. 마스크로 인해 가려졌던 후각이 뭔가 신선한 것을 찾아가는 듯. 여기에 새 소리도 유난히 명랑하게 들립니다. 기분 탓일까요? 30분의 짧은 점심시간이지만, 아내가 정성스레 싸 준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생각을 글로 두들기는 일은 저에겐 짧지만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걸 봅니다. 연방 하원이 바이든의 당선을 확인했습니다. 어제 그 난리가 났더만, 의회는 제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트럼프가 너무 나갔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부린 이 땡깡과도 같은 무리수로 인해, 원래 그의 존재감을 과시하려던 목적을 이탈해 스스로의 발목을 잡아 버린 셈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시끄러웠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오늘에서야 끝이 난 셈입니다. 이런 걸 봐선 미국의 대선 제도는 바뀌는 것이 마땅할텐데, 전통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의 특성상 그것이 얼마나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전통도 짧은 나라가 자기들의 전통에 매여 있는 걸 보면 좀 실소가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형식만이 아닌, 그 안에 담긴 가치를 중요시한다는 점에서 보면 부러운 점도 솔직히 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 말은 이번에 트럼프가 '건드려선 안될 것'을 건드렸다는 이야기도 됩니다. 임기를 한 달도 남기지 않은 대통령을 굳이 탄핵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의회주의가 강한 미국에서 '폭도'들이 의회를 침탈했다는 것은 전통과 그 가치를 지키려 하는 진짜 보수주의자, 즉 극우주의자가 아닌 일반적인 공화당원들도 불편하게 만든 셈입니다.

4년간의 '탈선'을 겪은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미국은 세계 최악의 코로나 발생국이 됐고, 이로 인해 겪어야 하는 경제적 고통도 큽니다. 지난번 대선이 엘리트주의에 대한 분노에서 촉발된 반발의 결과였다면, 이번엔 코로나로 인한 혼돈이 초래한 분노의 결과였던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이곳에 발을 디디고 살아가야 하는 저로서는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해야 했고, 그래서 바이든에게 투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에게서 루즈벨트를 기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튼 가끔은 상황이 영웅을 만들 때가 있으니 그가 최선을 다 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그래야만 미국도 트럼프같은 '진성 포퓰리스트'가 나와 정치를 하고, 마치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집권했던 때의 악몽을 다시 떠올리게 만드는 일도 없어질 것이고, 무엇보다 이들의 '정책'이 결국 지금 여러가지로 위기를 맞은 이 세계에서 어떤 이정표를 제시할 수도 있을 거니까요. 물론, 이들이 이렇게 뒤쳐지고 있는 사이, 대한민국은 요즘 말로 떡상해 버렸습니다. 어쩌면 지금과 같은 위기의 상황에서 한국이 모범이 되고 기준이 되는 이 상황과 미국의 침몰은 맞물려 있습니다. 물론 우리에게도 커다란 개혁에의 숙제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겐 무혈 혁명으로 무능하고 전횡을 일삼던 정권을 갈아버린 경험이 있으니, 그걸 공유하고 있는 이들의 앞서가는 의식을 믿긴 합니다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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