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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이끈 여성, 인권운동가 이희호 여사 탄생 100년 기념식

김기만 칼럼 | 기사입력 2022/09/26 [00:05]

시대를 이끈 여성, 인권운동가 이희호 여사 탄생 100년 기념식

김기만 칼럼 | 입력 : 2022/09/26 [00:05]

 

 

 

 

 

 

추분(秋分)을 이틀 앞둔 오늘(21일)은 문자 그대로 파란만장한 격동의 시대 97년을 살았던 故 이희호(李姬鎬, 1922-2019, 사진2, 3) 여사의 탄생 100년 기념일입니다.

 

서울 여의도 중소기협(中小 企協) 회관에서 이 여사 탄생 100년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이 여사 추모사업 추진위원장 신낙균 전 의원(전 문화부장관) 등 128명의 공동 제안으로 이루어진 행사였습니다.

 

 

 

신 위원장은 환영사에서 "여성에게 특히 엄혹했던 시대에 이희호 여사는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앞장섰던 여성, 인권운동가였다"며 "독재에 맞서 싸우고, 평화통일을 추구하며, 여성인권운동에 앞장섰던 고난과 신념의 길은 이 땅의 딸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영원한 DJ 비서실장'인 정계 최고 원로 권노갑 민주당 상임고문(92)은 회고담에서 "이 여사가 젊은 시절 이미 국가적 지도자들과 함께 시민사회 운동을 같이 했던 데에도 주목해야 한다"며 "따뜻하면서도 의지와 신념이 강철같은 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분의 DJ 비서실장인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축사에서 "2009년 대통령님이 별세했을 때 여사님은 '고통과 시련의 일생을 양심과 신념으로 극복하고 승리한 당신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고 하셨다"며 "그 말씀을 그대로 이 여사께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이 여사의 아들 김홍걸 의원은 지금까지 별로 언급되지 않았던 부모님의 면모를 밝혀 주목을 끌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민주주의, 인권, 양성평등, 한반도 평화 등을 위한 목표와 일관된 삶을 높이 평가한다. 그 목표 관철을 위한 치열한 행동의 삶은 맞다. 그러나 한편으로 부모님이 일생을 통틀어 적을 만들지 않으려 했으며, 덕을 베풀고 살고자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 이는 어떤 면에서 영국과 처절하게 싸우면서도 끝내 '비폭력 운동'으로 일관한 성인(聖人) 간디를 연상케 한다"(사진 7).

 

이어 <성평등 민주주의를 연 이희호의 신념과 열정>이란 제목으로 신경아 교수(전 한국여성학회장)의 짧은 강연이 이어졌습니다(사진 😎.

 

 

 

행사는 이 여사께 올리는 헌정편지 낭독과 기념공연으로 끝났습니다.

 

이화여전-서울대-미국 대학 유학파에 만 40살 때 한국 여성계를 이끄는 YWCA 총무였던 최고 환경의 이희호 여사는 상처(喪妻)한 두 아들의 아버지에 고졸(高卒)의 전라도 출신이었으며 '정치활동금지법'으로 묶여있던(그러나 정신은 살아있던) 두 살 아래의 '정치낭인' 김대중과 1962년 5월 10일 결혼함으로써 DJ에게 전혀 새로운 인생의 중요한 단초이자 큰 전환점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성의 모성애, 영원성, 그리고 길 잃은 양(羊)을 구하려는 기독정신이 그 길의 모태(母胎)였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희호 없는 김대중은 없다"(若無姬鎬, 是無大中)는 말에 절대 공감합니다.

 

김대중 대통령님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이와 함께 그런 DJ를 만드는 데 아내이자 동지요 평생의 도반(道伴)이었던 이희호 여사께 "고마웠습니다"라는 인사를 꼭 드리고 싶었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진심으로…".

 

 

 

* 사족(蛇足). 19일과 21일 연속해서 이희호 여사 100년 행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언론, 특히 레거시 미디어들. 일컬어 신문, 잡지, 라디오, TV(지상파, 보도전문채널, 종편)의 보도 깔아뭉개기는 똑같을 것이라는 예감에 쓸쓸해진다. 몇몇 인터넷 매체와 유투브 채널들이 관심을 보일 것입니다.

 

제발 이런 예감이 좀 틀리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봅니다.

 

김기만. 전 동아일보 파리특파원, 노조위원장/김대중 대통령 청와대 춘추관장/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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