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목격자의 새로운 증언 ˝신원식, 이일병 사망에 대해 100% 거짓말 국방장관 말이 안된다˝"참군인 아냐..거짓말에 분노,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지난해 9월 27일 국회 국방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출석한 신원식 후보자. 신 후보자는 "박격포 이야기가 사실이면 그날부로 국방부 장관에서 사퇴하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KPI뉴스'는 15일 <"신원식, 이 일병 사망에 대해 100% 거짓말 하고 있다"> 제목의 단독 기사를 통해 신원식 국방부 장관의 위선 행위를 당시 현장 목격자 증언을 통해 전했다. KPI뉴스는 기존 'UPI뉴스'에서 지난 1일 제호를 변경한 인터넷 매체다.
인권운동가 고상만씨는 해당 기사를 이날 페이스북에 링크하고 "널리 공유로 진실을 알리고 해병대 채 상병 사건과 마찬가지로 같은 군인이었던 이 일병의 죽음도 그 진상과 책임을 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고상만씨는 과거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서 사무국장을 지낸 인권운동가로 신원식 장관에게 해당 건으로 고소를 당했다.
고씨는 "오늘 출고된 기사는 어렵게 추가 취재를 통해 새로운 증인을 발굴해서 취재했다. 그래서 이제까지 신 장관이 부인해 왔던 사건 당시 헌병대 조사를 받을때 동행자의 진술을 밝혀냈고 그 분의 진술을 통해 사인 조작 왜곡에 신 장관이 직접 개입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 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KPI뉴스에 따르면 지난 1985년 10월 24일 경기도 포천 군 훈련장에서 참극이 벌어졌다. 피투성이 이 모 일병의 하반신은 처참했다. 허벅지에 커다란 구멍이 났다. 갓 스물 이 일병은 "엄마, 엄마"하며 신음했다. 이승에서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육사 37기)은 이 일병이 속했던 8사단 21연대 2대대 5중대 중대장이었다.
당시 군은 불발탄 사고로 정리했다. 훈련 중 실수로 'M203 유탄발사기 40㎜ 고폭탄 불발탄'을 밟아 목숨을 잃었다는 거였다.
그러나 37년 흘러 원인이 바뀌었다. 2022년 말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군사망위)는 재조사 끝에 '박격포 오폭에 의한 사고사'로 결론지었다. "정확한 사거리 측정 없이 급격하게 사격한 박격포 포탄에 의해 사망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결론이었다.
1985년 10월 19일 이 모 일병 사망 5일전 모습.(위에서 두 번째) 문 위에 신원식 당시 중대장(현 국방장관) 이름이 명시돼 있다. 목격자 A씨 제공 이 사건은 작년 9월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의 핫이슈였다. 신 후보자는 '박격포 오폭'을 부인했다. "군사망위 결정이야말로 실체적 진실을 뒤집는 허위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박격포 이야기가 사실이면 그날부로 국방부 장관에서 사퇴하겠다"고도 했다.
신 장관 주장은 당시 부대원들의 진술과 배치되는 것이다. 군사망위 조사엔 이 일병을 업고 달린 동료 3명, 박격포 사격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부대원·지휘관 15명가량이 참여했다.
누가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화기소대장조차 군사망위 재조사에서 "발포 순간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들어왔고, 박격포의 포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진술한 사실이 드러난 터다. "망인(이 일병)의 소속 부대 지휘관과 간부들은 망인의 사인을 불발탄을 밟아 사망한 것으로 왜곡·조작함으로써 사고의 지휘 책임을 회피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게 군사망위 결론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매체는 최근 이 사건 관련 또 다른 핵심 증인 A씨를 만났다. A씨는 사고 당시 이 일병 바로 옆에 있던 현장 목격자인데도 군사망위 조사를 받지 않은 인물이다. 스스로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는 신원식 장관과 각별한 사이라고 했다. "사석에서 신 장관을 '따거'(大哥)라고 부른다"고 했다. 중국어로 '큰 형님'이라는 뜻이다.
그런 A씨가 뒤늦은 고백에 나선 건데, 이유는 '실망과 분노'였다. A씨는 "참군인인 줄 알았던 신 장관이 거짓말하는 것에 분노했고, 오랜 고민 끝에 진실을 밝혀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다.
A씨는 "사고 당일 분명 사격 훈련이 있었다. 지금 신 장관은 100%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이 일병이 있던 곳은 사고 발생 5분 전까지 내가 위치해 있던 자리다. 39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상황을 선명하게 기억한다"고 했다.
다음은 A 씨와 일문일답.
ㅡ뒤늦게 고백하는 이유는.
"신 장관이 이 일병 사망 사건을 놓고 계속 거짓말하고 있다. 당시 사건 최초 목격자로서 진실을 뒤늦게나마 밝히고 싶었다."
ㅡ이 일병이 '박격포탄' 오발로 숨진 게 맞나.
"당시 오전엔 방어, 오후엔 공격 훈련을 했다. 방어 훈련은 실전 훈련이어서 실탄을 다 줬다. 이날 사격이 있었다. 훈련 과정인데 그걸 모를 수가 없다. 이미 예행연습으로 다 했다. 그러다 결국 오후에 사고가 난 것이다."
ㅡ신 장관의 '불발탄' 주장이 거짓이란 말인가.
"아직도 정말 생생하게 기억한다. 이 일병이 사망한 자리에 그전까지 내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지 8부 능선에 올라 좋은 자리를 잡았는데 이동하라고 무전이 왔다. 그래서 한 자리씩 옆으로 이동했다. 그러고서 2분도 안 돼 '뻥' 소리가 났다."
ㅡ당시 사고 상황을 설명해달라.
"이 일병이 사망한 자리는 6‧25전쟁 때 폭탄이 떨어진 탄흔지라 땅이 움푹 파여 있었다. 사고 직후 곧바로 가봤더니 이 일병의 오른쪽 대퇴부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A 씨는 사고 당시 이 일병 상태를 적나라하게 설명했지만, 너무 참혹해 구체적 묘사는 생략) 사고 직후, 의무대가 '단카'(들것)를 들고 왔다. 이 일병이 '엄마, 엄마' 하며 신음하고 있었다."
ㅡ신 장관은 군사망위 조사에서 박격포탄 발사 자체가 없었다고 말하는데.
"당시 중대원 대부분이 알고 있는 사실을 혼자만 그렇게 말하고 있다. 시간이 지났다고 그게(진실이) 변하지 않는다."
ㅡ이 일병 사고 직후 부대 상황은?
"훈련이 그대로 중단됐다. 8부 능선 고지에서 바로 내려와 집합했다. 대대장이 우리가 모여 있는 곳으로 와서 '5중대장(신 장관), 이거 불발탄 터진 거다'라고 말했다."
ㅡ군사망위 조사에서 신 장관은 당시 헌병대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거짓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중대에서 사건이 벌어졌는데, 지휘관이 조사받으러 가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헌병대 조사를 당연히 받았다. 같이 헌병대로 갔다. 당시 부대 책임자이자 박격포 운영할 수 있는 사람은 신 장관이다. 그리고 그날 그가 분명히 얘기했다. '아는 게 없으니까 불발탄일 거다'라고."
ㅡ조사 당시 상황을 더 설명해달라.
"중대장(신 장관), 대대 작전참모 등이 조사받았다. 대대 작전참모는 신 장관이 부임하기 직전 중대장이었다. 한 방에 모여 있다가 한 명씩 불러 조사를 받았다."
ㅡ지난해 일부 언론보도에 따르면, 신 장관이 군사망위 조사 직후 몇몇 중대원들을 만났다고 하던데.
"나는 참석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그 얘기를 들었을 때 '뭔가 작업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ㅡ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신 장관은 국회의원 될 자격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 (현재) 국방부 장관을 하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이다. 자기가 했던 걸 저렇게까지 거짓말할까. 내가 여태까지 알았던 신원식이라는 사람은 다 가식이었다."
'A 씨 제보 내용이 사실이냐'는 KPI뉴스 질문에 지난 3일 국방부는 "고(故) 이 일병 사건'과 관련해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및 인사청문회 기간 중 다양한 계기를 통해 수차례 상세하게 설명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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