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뉴스=문종준 기자]지난 8월 8일, 한 장군의 추모식이 서울 백범 김구 기념관에서 열렸다. 김홍일 장군,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인물이지만, 일제 억압시기, 나라의 독립을 위해 활약했던 많은 위인들의 이야기 속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다. 아마 오성장군이란 별명이 그를 가장 잘 나타내는 단어이다.
윤봉길 의사의 도시락 폭탄을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도시락 폭탄을 만든 사람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당시 김구 선생의 부탁으로 김홍일 장군은 중국군에서 장교생활을 한 경험과 인맥을 통해 이 도시락 폭탄을 만들어 왔고, 거사를 준비하는 청년에게 수류탄 투척과 폭탄을 다루는 군사기술까지 가르쳤다고 한다. 드라마 속 명품 조연 같은 그런 모습으로 말이다.
현 광복회장, 이종찬 회장의 추모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었다.
“6.25 당시, 다급하게 편성한 얼마 되지 않는 병력으로 한강을 사수해야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한강 방어를 맡게 된 장군은 제일 먼저 병사들이 잘 보이는 곳에 이렇게 써 붙여놨다고 합니다. ‘미국참전’, 이 문구에 사기가 오른 병사들은 방어선을 3일 이상을 버티며 미군과 연합군의 상륙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풍전등화의 상황을 해쳐나가는 그의 리더십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숙여지는 문구였다.
행사는 남궁선 서울지방보훈청장, 장군이 재직했던 1군단의 현 군단장과 장병들과 군악대, 정형균 육군사관학교장과 사관생도들까지 참석하여 참 군인으로서 그의 뜻을 기리고 이어가는 행사가 되었다. 또한 관계 기관의 대표들과 지인들, 그리고 윤봉길 의사의 손녀인, 윤주경 전 의원도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었다.
지난해, 43주기 추모식에는 김홍일 장군의 차남인 김덕재 선생이 한국을 방문하여 추모식에 참여했다. 무려 그의 장남까지 대동하여 미국에서 그 아버지의 추모식에 참여하기 위해 방한하였다. 그는 당시 89세의 연령으로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 그가 43년 동안 아버지의 추모식이 매년 진행되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는데, 작년 한 방송작가의 끈질긴 추적으로 그를 한국까지 안내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방송작가에게도 작은 박수를 보내 드리고 싶다. 그의 방문은 김홍일 장군의 기념회가 만들어지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기자의 큰 아들은 여느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 같이, 컴퓨터 게임 속에서 중무장한 탱크를 몰며 가상의 전장을 누비고 있다. 6.25전쟁으로부터 74년이 흘러, 이제는 휴전이니, 평화라는 단어조차 어색한 게 현실이고 사실, 북한의 도발과 군사적 긴장을 노리는 정치적 움직임도 우리의 일상의 변화까지 영향을 주지 못 하는 것 같다.
과거, 일본에 빼앗긴 국가를 다시 찾기 위해 피땀을 흘리며 희생했던 많은 분들,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위인들과 우리나라의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기 위해 평생을 바친 분들의 활약들이 우리의 다음 후손들에게 자칫 컴퓨터 게임 속의 캐릭터들의 활약 같은 모습으로 기억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위인들을 지켜가기 위한 사업회들과 이를 후원하는 기관들의 후원이 끊이지 않고, 수개월을 추적하여 장군의 아들을 찾아낸 무명의 방송작가 같은 이들의 노력과 존경심과 감사의 마음에 이끌려 그들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일반 시민들이 있는 한, 장군과 같은 숨은 위인들의 노력과 헌신은 결코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우리 사회를 더 멋지게 건강하게 발전해 가게 만들 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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