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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조일[바로보는 조선일보] - 13. 조선일보는 매를 벌지 말고 당장 폐간하라

이득우 조중동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 | 기사입력 2024/09/10 [00:03]

바보조일[바로보는 조선일보] - 13. 조선일보는 매를 벌지 말고 당장 폐간하라

이득우 조중동 폐간 시민실천단 단장 | 입력 : 2024/09/10 [00:03]

▲ 출처=조선일보  © 서울의소리

 

 

조선일보 이한수 종업원이 9월 2일에 ‘나석주는 왜 조선일보에 거사 계획을 알렸나’라는 글을 올렸다. 독립투사들이 펼친 피 끓는 항일투쟁을 묻어버리는 반역의 시대에 일본 띄우기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조선일보의 보도라 새삼 충격적이다. ‘의거 전 편지 보내 보도 부탁… 절대적 신뢰 있기에 가능한 일’이란다. 1926년 당시에 조선일보는 나석주 의사에게 절대적 신뢰를 받았을 수도 있다. 조선일보는 친일 실업인들의 모임인 대정친목회가 중심이 되어 창립했다는 한계에도 민족주의 인사들이 중심이 되어 한때 ‘조선 민중의 신문’으로 알려지기도 했으니 말이다. 

 

이한수 종업원에 따르면 조선일보가 ‘기밀이 새 나가지 않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절대적인 신뢰가 없었다면 이런 편지를 보낼 수 없었을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백번 맞는 말이지만 이종업원이 깜빡 잊은 사실이 있다. 조선일보는 1933년 친일·반민족 행위자 방응모가 인수하면서 철저한 반민족 신문이 되어버렸고 나석주 의사가 편지를 전한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방씨 일가 이전과 이후의 조선일보는 반민족 행위에 관한 한 하늘과 땅 차이다.   

 

이종업원은 내친김에 속내를 속 시원히 드러낸다. ‘"범인이라 썼다" 비난 몰역사적… 맥락 무시, 역사 재단하는 사람들’이 그것이다. 즉 독립투사를 범인이라 썼다고 비난하면 몰역사적이고 역사를 마음대로 재단하는 사람들이란 주장이다. 조선, 동아일보가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보도하면서 ‘범인’이라고 쓴 사실에 대한 변명이다. ‘당대 신문이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고 여기는 것이야말로 일제 통치를 찬양하는 일 아닌가?’라고 역공이다. 혼자 죽기는 싫으니 동아를 끼워 넣은 애교야 그렇다 치자. 이종업원의 '현묘한 논리'에 나 자신이 일제 통치를 찬양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도 도매금으로 반민족 매국 행위자로 매도될까 움찔한다. 

 

일제의 가혹한 검열로 불가피하게 범인과 범행이라고 썼고 당시는 ‘범행’이라고 써도 ‘의거’라고 알아들었단다. 사건 이후 100년 가까이 지난 현재도 뉴라이트라며 일제의 착취와 수탈을 미화하는 자들이 수두룩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장한 민족이다. 그런 조선 민중의 분위기 속에서 일본 제국주의에 앞장서 ‘극충극성(克忠克誠)’을 맹세한 조선일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미뤄 짐작할 만하다. 조선일보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에 대해서는 ‘범행’이라는 단어 대신 ‘흉행’이라고 표현하는 창의성까지 발휘했다.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고 과거를 함부로 재단하는 이들에게 이제는 세상을 떠나 말할 수 없는 당대 사람들은 한마디 변론도 할 수 없다. 나 의사가 조선일보에 보낸 편지가 후대에 알려지지 않았다면 당대 기자들은 ‘도매금’으로 매도당해도 반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 의사 편지는 적어도 당대 신문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비밀을 지키고 이후에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경이롭다. 이들 모두 독립 투쟁을 함께 한 게 아닌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들은 절대 동의하지 않을 터이지만, 그렇게 험난한 시대를 건너 대한민국을 세웠기에 지금 그렇게 비난할 자유도 얻었다는 사실엔 수긍하길 바란다.‘ 이종업원의 현란한 마무리가 경이롭다. 그래도 세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나석주 의사께서 방응모가 인수한 1933년 이후의 조선일보에 편지를 맡겼을지 한 번이라도 자문해 보라는 말이다. 일장기를 1면에 모시는 신문을 나석주 의사가 신뢰할 수 있었을까? 방응모가 인수한 이래 자행했던 반민족 행위는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이었기 때문이다. 1926년의 조선일보와 1933년 이후의 조선일보는 ’같은 이름, 다른 신문‘으로 보인다. 현재도 반민족 반민주에 여념이 없는 방씨 조선일보를 미루어 나석주 의사의 편지는 다른 곳으로 전달되었을 것이 뻔하다.   

 

둘째, 조선일보가 가혹한 검열로 나석주, 이봉창, 윤봉길 의사들의 의거를 ’범행‘이나 ’흉행‘이라고 썼다고 치자. 그렇다면 그런 사실을 해방 후에라도 진심으로 고백하고 사죄했는지 묻고 싶다. 제대로 된 반성과 사죄가 없기에 지금도 조선일보는 떳떳하게 ’침범을 걱정할 나라는 일본‘이라는 논리를 전개할 수 있다. 족벌언론기업 조선일보는 한글로 된 일본 신문이라는 말이 비아냥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셋째, 조선일보가 지면을 통해 동아일보에 동지애를 과시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1936년 일장기 말소 사건에 여운형 선생이 이끌던 조선중앙일보는 끝내 폐간의 길을 걷는다. 동아일보는 창간 이래 최대의 시련을 겪지만 철저한 반성으로 반민족 논조를 더욱 강화한다. 민족이나 정의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에만 눈이 먼 조선일보는 이때를 라이벌인 동아일보를 압도할 수 있는 호기라고 생각하여 편집 방침까지 바꾸며 적극적인 반민족 행위로 나섰다는 것이 정설이다.

 

매를 번다는 말이 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야단을 맞는다는 뜻이다. 일본 띄우기에 진심인 조선일보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아마도 조선일보가 정성을 들여온 일본띄우기가 성공적이라 생각하며 좀 뻔뻔스러워도 되겠다 싶었던 모양이다. 당시 사정이 그러해서 독립투사를 ’범인‘, ’범행‘이라고 썼기로서니 뭐가 문제냐는 투다. 오히려 그런 말을 쓸 수밖에 없었던 민족 정론지 조선일보를 탓하는 사람은 일제 통치를 찬양하는 자로 몰아붙이는 현란한 논리 비약까지. 

 

조선일보는 더 이상 매를 벌지 말고 당장 폐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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