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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가 누리는 휴식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9/01/19 [01:53]

내 귀가 누리는 휴식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19/01/19 [01:53]



병원에 간병하러 와 있다는 것이 꼭 힘든 경험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버지 옆에 머물러 있는 덕에 저도 어쩌면 쉬고 있는 것이겠지요. 하루 몇 마일씩 걷던 걸 안 걸어서 그런지 약간의 압통이 늘 존재하던 것이 사라졌는데,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늘 귀에 꽂고 있었던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쓰지 않은 지가 꽤 됐습니다. 가끔 아버지 주무실 때나 헤드폰 쓰고 음악을 듣지, 항상 내 귀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아버지는 꽤 오래 전부터 보청기를 사용하셨습니다. 청각이 거의 상실된 아버지는 자기가 얼마나 크게 말하는지를 모르시는 경우가 왕왕 있었고, 특히 집안에서 TV볼륨을 얼마나 크게 해 놓고 지내시는지를 모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에게 이런 사고가 나기 전, 부모님 집 앞에 차를 세워 놓고 거실로 통하는 뒷마당으로 걸어올라가는 동안 TV 소리가 너무 크면 아버지가 지금 뭔가를 시청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저도 귀에 좀 쉼이 필요했을 겁니다. 늘 귀에 꽂고 다니는 이어폰으로 듣던 팟캐스트 대신, 아버지가 원하는 것들을 듣느라 귀가 쫑긋 세워져 있습니다. 물, 음식, 주물러 달라 하시는 부탁들. 그리고 엄청난 양의 대화들. 아버지는 잘 듣지도 못하시지만, 아무래도 영어 회화가 딸리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서 제가 아버지의 손과 귀 노릇을 하면서 나누는 대화의 양은 평소에 제가 제 일상을 살 때와는 그 규모가 완전히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아버지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한 대화들이기 때문에 그 의미가 더욱 중요한 것들입니다.

어쨌든, 뜻밖의 시간에 제 귀는 쉼을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어폰과 헤드폰을 통해 다른 세상과 일부러 나를 단절시켰던 시간들 대신에 아버지와, 그리고 병원의 수많은 이들과, 병원 근처에서 나는 온갖 소리들과 맨 귀로 만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의 소리도 그렇게 오랜만에 귀 기울여 오랫동안 들어 봅니다. 가끔 팟캐스트 대신 음악을 접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것임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되구요.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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