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벽예감 426> 한 나라 영토에 두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한호석 (정치학 박사,통일학연구소 소장,미국 뉴욕 거주)
<차례>
1. 한 나라 영토에 두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2.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이완되는 현상 3. 통일국가건설을 경제성장문제로 왜곡하는 현상 4. 두 지역으로 분렬된 나라를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는 분단원흉
1. 한 나라 영토에 두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았다. 아침은 밝아왔어도, 통일의 여명은 아직 보이지 않는 2021년 새해 첫날, 지도를 펼쳤다. 20여 년 전 어느 날 통일강연을 하기 위해 고속렬차를 타고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역에 내려 우연히 들른 역전책방에서 구입한 1:1,050,000 축적의 지도다. ‘우리나라 지도’라고 쓴 굵은 글씨체 제목이 선명하다. 미국에서 40년을 살아온 나에게 우리나라 지도는 떠나온 조국을 그리워하는 마음의 표상이다. 선조들이 수수천년 살아온 산천이 그 지도 속에 보이고, 내가 태어나 자란 서울의 낯익은 거리가 그 지도 속에 보이고, 우리나라가 통일되는 날 다시 돌아가고픈 새로운 세상이 그 지도 속에 보인다.
지도에는 우리나라 국경이 표시되었다. 북방으로는 790km에 이르는 압록강과 547km에 이르는 두만강까지, 그리고 남방으로는 제주도 남쪽 11km에 있는 작은 섬 마라도까지 우리나라 영토다.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동서를 관통하는 240km의 군사분계선은 국경선이 아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에 의해 그어진 군사분계선은 하루빨리 철폐되어야 할 분단선이지, 국경선이 아니다. 우리나라 북방국경선은 압록강 하구에서 두만강 하구에 이르는 1,400여 km에 걸쳐있으며, 우리나라 최남단영토는 섬면적이 0.3㎢밖에 되지 않아 한 개의 작은 점으로 지도에 표시되는 마라도이다. 새해 아침에 펼쳐본 지도는 조국의 영토관념을 일깨워주었다.
북쪽으로는 백두산 천지에, 남쪽으로는 마라도에 이르는 우리나라 영토에는 두 나라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도 두 나라가 존재할 수 없다. 한 나라 영토에 두 나라가 존재한다는 말은 궤변이다. 백두산 천지에서 마라도에 이르는 우리 영토에는 오직 한 나라만 존재한다. 이런 진리를 깨달으면, 우리나라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분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우리나라는 두 나라로 갈라진 것이 아니라, 통일국가가 건설될 때까지 서로 다른 두 개의 국명을 남과 북에서 각각 사용하는 것이다.
남과 북이 한 나라 안에서 국명을 각각 다르게 사용하는 것은 상대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북은 남조선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남은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북은 남조선을 미국이 점령한 미해방지역으로 인정하고, 남은 북한을 미수복지역으로 인정하고, 미국은 북조선을 미점령지역으로 인정한다. 그래서 북은 미해방지역인 남조선을 해방하려는 것이고, 남은 미수복지역인 북한을 수복하려는 것이며, 미국은 미점령지역인 북조선을 점령하려는 것이다. 이런 첨예한 대결구도가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정을 깨뜨리고 전쟁재발위험을 항시적으로 조성하는 근본원인이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후 오늘까지 존속하는 첨예한 대결구도를 해체하고 평화와 안정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통일국가가 건설되지 않았기 때문에 북은 미해방지역을 무력으로 해방하려는 것이고, 남은 미수복지역을 무력으로 수복하려는 것이며, 미국은 미점령지역을 무력으로 점령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국가를 건설하지 않으면, 평화와 안정은 언제가도 실현될 수 없고, 전쟁재발위험은 항시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국가가 건설될 때까지 남과 북은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남북평화공존은 분단체제에서 실현될 수 없으며, 평화적 분단체제라는 말도 어불성설인 것이다. 이처럼 명백한 이치를 알지 못하면, 남과 북이 분단체제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고, 분단체제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명백하게도, 분단체제와 평화체제는 그 어떤 경우에도 공존할 수 없는 상극체제이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의 평화운동과 달리, 분단체제에서의 평화운동은 독자적 지위를 갖지 못하며,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조국통일운동에 종속된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분단체제에서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는 궤변이 남측 사회에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해마다 성인 남녀 1,000여 명을 직접 만나 면접하는 방식으로 통일의식에 관한 여론조사를 진행한다는 통일연구원이 2019년 12월 12일 여론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은 1990년 8월에 제정된 민족통일연구원법에 의거하여 1991년 4월에 창립되었는데, 2020년 4월 문재인 정부는 탈북자를 원장에 임명했다. 대북적개심을 지닌 탈북자가 원장에 임명되었으니, 통일연구원의 사업이 얼마나 반북적으로 흘러갈 것인가는 더 이상 물어볼 필요도 없다. 통일연구원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4년 동안 진행한 통일의식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1) 우리나라가 통일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비률은 2016년 37.3%, 2017년 31.7%, 2018년 32.4%, 2019년 28.8%로 해마다 낮아졌다.
2) 남과 북이 전쟁을 하지 않고 평화적으로 공존할 있다면 통일은 필요 없다고 응답한 비률은 2016년 43.1%, 2017년 46.0%, 2018년 48.6%, 2019년 49.5%로 해마다 높아졌다.
위에 인용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지난 4년 동안 남측 사회에서 조국통일의식이 점차 박약해진 반면, 남과 북이 분단체제에서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궤변이 점차 확산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여론조사결과는 모든 연령층 응답자들 가운데서 20대 청년들이 남북공존론을 가장 선호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장차 통일국가의 주역으로 나서야 할 청년들 가운데서 상당수가 분단체제에서 남과 북이 평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다는 궤변에 속아 넘어가 조국통일의지를 상실한 것이다. <사진 1>
2.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이완되는 현상
우리 민족사에 처음 등장한 통일국가는 918년에 세워진 고려다. 통일국가를 건국한 태조 왕건(877~943)은 신성대왕이었다. 발해가 926년에 멸망했고, 후기신라가 935년에 멸망했고, 후백제가 936년에 멸망했으므로, 고려가 진정한 의미의 통일국가로 등장한 때는 936년이라고 보아야 한다. 통일국가 고려의 등장을 민족사적 대사변으로 보아야 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왕건대왕은 18년 동안 지속된 통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위대한 통일국가를 건설했다. 왕건대왕은 후기신라와 후백제를 각각 항복시키고 그 두 나라를 포섭하는 방식으로 통일전쟁을 수행하였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적대시하면서 발해의 유민을 고려에 받아들였다. 통일전쟁에서 동족끼리 싸우더라도 살상은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왕건대왕의 통일전쟁원칙이었다.
2) 고려는 중국과 거란에 굴종하지 않는 자주통일국가였다. 왕건대왕이 고려를 건국했을 때, 중국은 오대십국시대(907~979)로 분렬되어 있었고, 거란(916~1125)의 국력은 아직 약한 상태에 있었다. 침략외세인 당나라와 동맹하여 동족국가들인 고구려와 백제를 멸망시킨 후기신라(676~935)는 고구려 영토에 재건된 고구려의 계승국 발해(698~926)와 공존하였으므로, 통일국가가 아니었다. 후기신라를 ‘통일신라’라고 부르는 것은 우리 민족사에서 발해를 배제시키는 엄중한 과오다.
3) 고려는 고구려를 계승한 위대한 통일국가였다. 왕건대왕은 서경(오늘의 평양)을 전략거점으로 중시하면서 고구려의 옛 영토를 회복하기 위해 힘썼다. 고려의 북방국경선은 요수(遼水)에 그어졌는데, 그로써 광개토대왕의 강국건설정책에 따라 402년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던 요수의 광대한 동부지역(요동6주=강동6주)이 고려의 영토로 되었다. 오늘날 랴오허(遼河)라고 부르는 요수는 고구려 때부터 고려 때까지 압록수(鴨淥水)라고 불렀는데, 압록수는 오늘의 압록강이 아니다. 압록수의 록(淥)은 밭을 록자이고, 압록강의 록(綠)은 초록빛 록자다. 일본제국의 역사학자 쓰다 쏘우끼찌(津田左右吉)는 1913년에 펴낸 ‘조선력사지리’에서 고려의 북방국경선인 압록수(오늘의 랴오허)를 오늘의 압록강으로 바꿔놓고 고려의 영토를 반도로 축소시켰다. 일제의 식민사관은 강대한 대륙국가 고려를 왜소한 반도국가로 만들었다.
고려가 통일국가로 등장한 이후 올해까지 1,084년 세월이 흘렀다. 그 장구한 세월 동안 우리 선조들은 하나의 국가 안에서 하나의 민족으로 살아왔다. 1,084년 동안 국가는 변천되었으나, 민족은 공고하게 결합된 사회적 집단으로 장성해왔다.
민족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말은 근대적 국가관념이 형성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쓰이기 시작했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가 2019년에 집필한 논문에 따르면, 1900년 <황성신문>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처음 사용되었고, 1919년 3.1운동을 거치면서 대중적으로 널리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예컨대, 1920년 4월 6일 <동아일보>는 사설에서 민족은 역사적 산물이며, 생명을 가진 실체라고 서술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민족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시대는 일제식민통치에 저항하여 민족동질의식이 강화되고 민족주의가 출현했던 반일항쟁기였다. 반일항쟁기에 등장한 민족주의가 민족담론을 자기의 전유물처럼 만드는 바람에 민족담론과 계급담론을 대치시키는 인식착오가 생겨났지만, 원래 민족담론은 민족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며, 민족담론과 계급담론은 서로 대치되는 것이 아니다. 민족담론은 근대적 민족국가의 출현과 더불어 생겨났지만, 근대적 민족국가가 출현하기 이전에도 우리 민족은 스스로를 겨레라고 불렀다.
중화민족, 일본민족, 윁남민족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여러 겨레들이 한 나라 안에 공존하는 복합민족이지만, 우리 민족은 단일언어를 사용하는 단일겨레가 통일국가를 건설한 단일민족이다. 단일혈통과 단일언어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성이다. 1,084년 세월 동안 우리의 단일언어 안으로 몇몇 외래어가 흘러들어왔어도 민족어의 단일성과 순수성이 변함없이 보전되어온 것처럼, 1,084년 세월 동안 우리의 단일혈통 속에 몇몇 외래혈통이 흘러들어왔어도 민족혈통의 단일성과 순수성은 변함없이 보전되었다. 단일혈통과 단일언어에 관한 담론은 우리 민족의 고유한 특성을 밝혀주는 것이지, 민족우월주의나 민족배타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강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도 언제나 변함없이 존재하는 바다처럼 민족은 크고 넓고 깊은 존재다. 사회적 관계로 결합된 여러 집단들 가운데서, 민족은 가장 크고 넓고 깊은 집단이다. 약 37조 개의 세포들이 결합된 개별적 생명체인 사람처럼 우리 민족은 약 8,000만 개의 개별적 구성원들이 결합된 집단적 생명체다. 인체에 상처가 나면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집단적 생명체인 민족도 분렬의 상처를 입고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우리나라의 분단은 1,000년 통일민족사를 훼손한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재난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남과 북으로 분렬된 민족에게 통일국가건설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과업으로 된다.
우리가 통일국가를 반드시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통일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집단적 생명체인 민족이 분렬의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완성하고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국가는 민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체의 필수불가결한 존재근거이며, 통일국가건설은 민족이라는 집단적 생명체의 자주적인 요구다. 반일항쟁기에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민족적 권리였던 것처럼, 오늘 분단시기에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민족적 권리다. 통일국가건설의 기초는 민족의 자주성이다. 자주민족의식을 가져야 민족관을 세울 수 있고, 민족관을 세워야 자주통일의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통일국가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는 궤변이 남측 사회에서 떠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심각한 문제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7년 12월 말 통일연구원이 펴낸 ‘통일 이후 통합방안: 민족주의와 편익을 넘어서 통일담론의 모색’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통일국가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비률은 41.1%였고, 그와 반대되는 의견에 응답한 비률은 23.6%였다고 한다. 남과 북이 같은 민족이라고 해서 반드시 통일국가를 건설할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비률을 연령층으로 구분하면, 20대는 49.7%, 30대와 40대는 각각 43.8%, 50대는 37.2%, 60대 이상은 34.0%라고 한다. 또한 남과 북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것이 진정한 소망이라고 응답한 비률을 보면, 20대는 13.7%, 30대는 18.2%, 40대는 22.6%, 50대는 32.2%, 60대 이상은 30.3%라고 한다.
위에 인용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남측 사회에서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이완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그런 이완현상이 지금보다 더 악화되어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해체되면, 통일국가건설의 정신적 기초가 무너지고 통일국가건설운동은 쇠락할 것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이완되는 현상이 20~30대 청년들에게서 더 심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장차 통일국가의 주역으로 되어야 할 청년들 속에서 민족동질의식과 조국통일의지의 결합이 이완되는 것은 매우 위중한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사진 2>
3. 통일국가건설을 경제성장문제로 왜곡하는 현상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통일국가를 반드시 건설해야 하는 이유는 집단적 생명체인 민족이 분렬의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 자주성을 완성하고 발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그런데 남측 사회에서는 통일국가건설을 경제성장문제로 왜곡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011년 10월 7일 통일부의 용역을 받은 연구진이 10개월 동안 연구하여 작성했다는 보고서는 다음과 같은 전망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가 2020년에 통일된다고 가정하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30년에는 통일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이 3조6,550억 달러로 급증하여 세계 8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가 2030년에 통일된다고 가정하면,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40년에는 통일국가의 국내총생산이 5조4,081억 달러로 급증하여 세계 7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그 보고서는 통일국가가 환서해경제권과 환동해경제권을 중심국가로서 동북아시아의 중심축이 되고, 통일국가의 교통망이 아시아의 대륙교통망 및 태평양 항로와 각각 연결되어 세계의 중심적 물류거점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일국가건설을 경제성장문제로 왜곡하는 현상은 원래 미국의 국제금융자본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2009년 9월 21일 미국 뉴욕에 있는 국제금융기관인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는 우리나라가 통일되면 30~40년 뒤에 국민소득이 87,000달러로 급증하여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의 경제강국으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했었다.
하지만 남측 경제가 성장동력을 잃어버리고 파산위기에 빠져든 오늘의 현실을 보면, 지금으로부터 9년 전에 나온 그런 장밋빛 전망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비과학적 전망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런 비과학적인 경제전망을 가지고 통일국가의 미래를 예상하였다는 사실이다.
국제금융자본의 비과학적인 전망은 조선을 핵포기와 개혁-개방으로 유인하여 사회주의계획경제를 무너뜨리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시키려는 흡수통일론의 경제적 변종이다. 그런 흡수통일론은 북을 극도로 자극하는 도발담론에 불과하므로, 더 이상 거론할 가치가 없다.
그와 다르게, 합리적인 정세분석에 기초한 전망은 통일국가가 건설되는 경우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과두제(international financial oligarchy)가 통일국가를 전복시키기 위해 경제제재를 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의 통일을 반대하는 국제금융과두제가 신생통일국가에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전망은 조선의 사회주의계획경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시장경제로 변질될 것이라는 도발담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합리적이며 과학적이다.
많은 사람들은 통일국가가 건설되면 북의 풍부한 천연자원과 남의 산업기술이 결합하여 통일국가의 경제가 급속히 발전할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것은 빗나간 예상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과두제가 통일국가에 가하는 경제제재 앞에서 대외의존도가 높은 남의 산업기술력은 무용지물로 될 것이다. 이런 예상은 북의 자립경제가 통일국가의 경제발전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점을 예고해준다.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금융과두제가 통일국가에 경제제재를 가해도, 미국의 집요한 방해와 도발을 꺾고 통일국가를 건설하게 될 우리 민족은 오랜 통일국가건설운동 속에서 단련되고 강고해진 주체력량으로 국제금융과두제의 경제제재를 무력화하고 자립경제를 급속히 발전시킬 것으로 예견된다. 국제금융과두제의 경제제재를 받는 통일국가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는 자립경제로선을 추구하는 길밖에 없다. <사진 3>
2018년 12월 21일 <동아일보>에 또 다른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다. 2018년 12월 2일 국회미래연구원이 진행한 ‘미래공론조사’에 참여한 고려대 경영학과 학생의 체험담이다. ‘미래공론조사’에 참여한 그 대학생은 <동아일보> 취재기자에게 자신의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10여 년 동안 학교에서 통일 아니면 분단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교육을 받다가 그 중간에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런 중간의 국가간 형태들을 세계 각지에서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왜 그걸 남북관계에 적용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나 안타까움도 있었어요.” 그는 남북관계가 2030년에는 미국과 캐나다처럼 우호적인 국가관계로 변화되고, 2050년에는 건국 초기의 미국처럼 느슨한 연방국가로 전환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심각한 문제는, 그 대학생 한 사람만 그렇게 희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공론조사에 참가한 응답자들 가운데 46.3%가 앞으로 10년 뒤에 남북관계가 미국과 캐나다처럼 우호적인 국가관계로 변화되기를 바랐고, 응답자들 가운데 27.4%가 앞으로 30년 뒤에 남북관계가 느슨한 연방국가로 전환되기를 바랐다고 한다.
공론조사에 참여한 사람들은 국회미래연구원이 나누어준 자료집을 읽고 학습과 토론을 벌이면서 세 차례의 설문조사에 응했는데, 1차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의 통일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응답한 참여자들은 2차 설문조사와 3차 설문조사를 거치면서 통일지연론에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바람에 통일시기를 평화공존시기 이후로 더 지연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명백하게도, 이런 의식변화는 선평화, 후통일론을 주입받았을 때 발생하는 현상이다. 통일국가건설운동에 참여할 기회가 없었던 사람들에게 선평화, 후통일론을 주입하면, 통일지연론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통일국가건설을 평화공존 이후로 지연시키는 선평화, 후통일론은 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담론에 불과하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위에 서술한 것처럼, 국회미래연구원은 ‘미래공론조사’에서 우리 민족이 느슨한 연방국가를 건설하는 시기를 2050년으로 예상했다. 그런 예상에 따르면, 연방제 통일은 분단원년인 1945년을 기준으로 산정할 때, 105년 뒤에나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통일국가건설을 100년 뒤로 지연시키는 것도 용납될 수 없지만, 2050년으로 예상하는 통일시점도 아무런 과학적 근거도 없이 제멋대로 설정한 것이므로, 연방제 통일이 105년 뒤에 실현될 수 있다는 주장은 믿을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통일국가건설시기를 사실상 무한정 연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바로 여기서 선평화, 후통일론의 반역사성이 드러난다. 선평화, 후통일론은 우리 민족이 통일국가를 건설하여 자주적으로 발전하려는 노력을 무한정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반역사적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시기 일제가 장악한 식민지체제에서 우리 민족이 수행해야 했던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업은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고, 그와 마찬가지로, 현 시기 미국이 장악한 분단체제에서 우리 민족이 수행해야 할 가장 시급하고 중대한 과업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다. 반일항쟁기 36년 동안 우리 민족이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는 시기를 하루도 지연시켜서는 안 되었던 것처럼, 오늘 분단시대 75년 동안 우리 민족은 자주통일국가를 건설하는 시기를 하루도 지연시킬 수 없다. 우리 민족은 75년 동안 깊어진 분렬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해야 한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면, 통일국가건설을 무한정 지연시키는 선평화, 후통일론이야말로 반역사적 담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2) 위에 서술한 것처럼, 국회미래연구원은 ‘미래공론조사’에서는 남북관계가 미국과 캐나다처럼 우호적인 국가관계로 변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북관계가 미국과 캐나다처럼 우호적인 국가관계로 변화될 것이라는 예상은 우리나라가 두 나라로 완전히 갈라질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누구나 직감하는 것처럼, 우리나라가 두 나라로 분렬될 것이라는 말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반민족적인 망언이다. 남과 북 두 지역으로 분렬된 우리나라가 두 나라로 완전히 분렬되면, 우리 민족도 두 민족으로 분렬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를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는 것은, 통일국가 고려가 등장한 이후 1,084년 동안 집단적 생명체로 살아온 단일민족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끊어버리려는 잔인한 범죄가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분단체제를 무너뜨리고 하루빨리 통일국가를 세워야 할 판에, 두 지역으로 분렬된 우리나라를 두 나라로 완전히 분렬시키려는 것은 극악한 국가분렬범죄가 아닐 수 없다. <사진 4>
두 지역으로 분렬된 우리나라를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는 국제음모를 꾸며낸 범죄자는 미국이다. 1975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씬저(Henry A. Kissinger)는 1975년 9월 22일 제30차 유엔총회에서 연설하면서 남과 북에 대한 주변국들의 교차승인(cross-recognition)을 제안했다. 그는 “조선과 동맹국들이 한국과 관계를 개선하면, 미국과 한국도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세계사의 격변기에 소련과 동유럽에서 사회주의체제가 연속 붕괴되고, 중국이 미국과 관계를 정상화하는 정세변화에 편승한 미국은 노태우 독재정권을 앞세워 이른바 ‘북방외교’를 추진했다. 노태우 독재정권의 북방외교는 우리나라를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는 키씬저의 교차승인음모를 실행에 옮긴 반민족적 외교정책이었다. 노태우 독재정권이 북방외교를 추진한 것으로 하여 1990년 9월 30일 한국과 소련이 수교합의의정서에 서명했고, 1992년 8월 24일 한국과 중국이 한중외교관계수립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그런 정세격변 속에서 미국이 노린 것은 남과 북을 유엔에 별개의 국가로 가입시켜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는 유엔동시가입이었다. 북은 남북유엔동시가입을 반대하면서 남북단일의석가입을 주장했다.
1991년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회고록에서 ‘북방외교의 성과’에 의해 소련과 중국은 남측이 유엔에 단독가입을 신청해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겼고, 만일 북측이 끝까지 유엔동시가입을 거부하면 남측이 단독으로 유엔에 가입할 작정이었다고 술회한 바 있다. 이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만일 북이 남북유엔동시가입을 반대하고 남북단일의석가입을 끝까지 주장하면, 남측만 단독으로 유엔에 가입하고, 북측은 유엔에 가입하지 못하는 더 심각한 사태가 벌어질 수 있었다. 이런 사정을 간파한 북은 1991년 5월 자기의 남북단일의석가입안을 철회하고, 유엔에 가입신청을 냈다. 그렇게 되어 남과 북은 1991년 9월 17일 제46차 유엔총회에서 별개의 국가로 동시에 가입했다.
키씬저가 꾸며낸 교차승인음모에 따르면,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수교하면, 그에 상응하여 미국과 일본도 조선과 수교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소련과 중국이 한국과 수교한 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오늘에도 미국과 일본은 조선과 수교하기는커녕 조선과 대결하는 적대정책에 계속 매달리고 있다. 키씬저의 교차승인은 세상을 속인 기만음모였다. 30년 전 노태우 독재정권은 키씬저의 교차승인음모에 따라 남북유엔동시가입을 추진하면서 남과 북이 별개의 국가로 각각 유엔에 가입하더라도 일단 유엔에 들어가면 유엔성원국으로서 상호협력하게 될 것이라고 떠들었지만, 지난 30년 동안 남과 북은 유엔에서 상호협력하기는커녕 정면대결만 계속해왔다.
북위 38도선을 분할선으로 획정하고 그 이남지역을 점령하였을 뿐 아니라, 남과 북을 유엔에 동시에 가입시켜 우리나라를 두 나라로 분렬시키려고 광분한 미국은 오늘도 여전히 분할점령정책에 집착하고 있다. 또한 그런 분단원흉을 숭상하고 추종하는 종미예속세력은 선평화, 후통일론이라는 궤변을 퍼뜨리며 국가분렬정책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분할점령정책에 집착하고, 종미예속세력이 국가분렬정책을 자행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절대로 두 나라로 분렬되지 않을 것이며, 뜻밖에 통일국가건설시기가 생각보다 훨씬 더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남과 북의 민족주체력량이 분할점령정책과 국가분렬정책을 전면적으로 배격하면서 통일국가건설운동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만일 미국이 분할점령정책에 계속 집착하고, 종미예속세력이 국가분렬정책을 계속 자행하면, 북은 그런 반민족적 책동을 저지, 파탄시키기 위해 통일전쟁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사정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분단체제를 우호적인 국가관계로 변화시키려는 그 어떤 기도도 실패할 것이며, 그런 기도를 자행하는 세력은 파멸을 면치 못할 것임을 알 수 있다.
비록 통일의 여명은 아직 보이지 않지만, 우리 민족이 주체력량으로 가까운 장래에 통일국가를 건설할 것이라는 전망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확정적이다. 통일국가건설은 과학이며 신념이다. <저작권자 ⓒ 국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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