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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최종 폭풍연설 9분..'소년 노동자'가 여당 대통령 후보로 우뚝!!

"대통령은 지배자가 아닌 국민의 공복..적폐 청산, 당선 즉시 부동산 대개혁"

정현숙 | 기사입력 2021/10/11 [19:15]

이재명, 최종 폭풍연설 9분..'소년 노동자'가 여당 대통령 후보로 우뚝!!

"대통령은 지배자가 아닌 국민의 공복..적폐 청산, 당선 즉시 부동산 대개혁"

정현숙 | 입력 : 2021/10/11 [19:15]

국민학교만 졸업후 공장 취업한 소년공 출신

대법 무죄 판결로 회생..꺾이지 않는 지지율로 과반 달성

 


1978년 야구 글러브 공장인 `대양실업`  14세 소년공 시절.  그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했다.  이재명 캠프
성남 지하 셋방에서 처음으로 지상으로 옮기면서 모친과 함께 식구들이 모여 식사하는 모습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에 이재명 후보가 누적 득표율 50.29%로 과반 득표에 성공해 결선 투표 없이 본선으로 직행하면서 대통령 선거를 150일 앞둔 경선 대장정의 막을 내렸다.

 

이 후보는 10일 서울 방이동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서울지역 순회경선을 포함한 11차례 지역경선과 세 차례 일반당원·국민 선거인단 투표에서 누적득표율 50.29%를 기록했다.

 

이날 이재명 후보는 경선 결과 발표 이후 예정된 ‘후보 수락 연설’을 ‘후보 선출 감사 연설’로 대신해, 대통령은 지배자가 아니라 ‘공복’이라며 자신의 정치철학을 담아 약 9분에 이르는 '폭풍연설'을 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삶을 지키는 든든한 대통령이 되겠다”라며 “정쟁에 빠져 민생을 소홀히 하는 일 없이 ‘오직 국민, 오직 민생’의 신념을 지키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선 즉시 강력한 ‘부동산 대개혁’으로 부동산 불로소득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없애겠다”라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또 "국민의 삶을 옥죄고, 공정을 해치는 모든 것이 적폐"라면서 "정치, 행정, 사법, 언론, 재벌, 권력기관뿐 아니라 부동산, 채용, 교육, 조세, 경제, 사회, 문화 등 국민의 삶 모든 영역에서 불공정과 불합리를 깨끗이 청산하겠다"는 포부를 천명했다.

 

아울러 국민 보편 복지국가와 문화강국을 거론한 이 후보는 연설 마지막에 김구,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을 언급하며 민주적 정통성을 계승하는 후보임을 분명히 밝히면서 "내년 3월 9일, 반드시 승리하겠다. 그리고 두 달 후 대통령 취임식장에 존경하는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굳게 손잡고 서겠다"라고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여당의 대선주자로 이 후보가 선출되는 즉시 “민주당 당원으로서 이 지사의 후보 지명을 축하한다”라고 밝혔다.

 

이 후보는 소년공에서 시작해 여당 대선 후보에 오르기까지 삶과 정치 역정이 매우 험난했다. 자신이 직접 밝힌대로 중·고등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나이가 너무 어려 공장에 취직도 할 수 없어서 남의 이름으로 공장을 다녔다. 프레스에 눌려서 팔이 휘어지고, 독한 약품에 후각을 절반 이상 잃어버린 장애인 소년 노동자 출신이다. 정치적 후광도 조직도 학연도 지연도 딱히 없는  변방의 아웃사이더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국회의원, 청와대, 중앙정부 관련 경험 없이 당내 비주류로 대선주자 반열에 오른 첫 사례로 꼽힌다.

 

이 후보가 SNS를 통해 직접 밝힌 가족사를 짚어보자. 그는 1964년 경북 안동 영양 봉화 접경인 심심산골, 안동군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5남 2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은 '가난과의 싸움'이었다. 7남매를 데리고 산전을 일궈 살던 부친은 이 후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집을 나가면서 모친 혼자 7남매를 키웠다.

 

모친은 남의 밭일을 대신해주고 겉보리 한 되 좁쌀 한 됫박씩 얻어먹으며, 사람이 굴러내릴 정도의 급경사 산비탈을 일군 산밭에서 키운 감자로 어린 자식들의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자식들과 살아남기 위해 모친은 감시원 눈을 피해 막걸리를 빚어 농사일이 끝난 밤에 술장사를 했고, 가끔 장에 나가 진통제 가스명수 같은 간단한 의약품을 떼어다 파는 약장사까지 했다.

 

이 후보는 1976년 삼계국민학교 졸업 후 온 가족이 경기 성남으로 올라가 터를 잡았다. 그는 부친이 일하던 성남시 상대원동에 있던 '동마고무' 공장에서 소년공 생활을 시작했다. 야구 글러브 공장에서 일하다 동력 벨트에 세 손가락이 휘감겨 엉겨 붙고, 프레스에 왼쪽 팔뚝을 찍혀 장애등급 6급 판정을 받아 군대도 갈 수 없었다.

 

가난과 굶주림 속에서 공장 생활을 하던 그의 꿈은 "남에게 쥐어터지지 않는 것, 배불리 먹는 것, 자유롭게 다니는 것"이었다. 소년공으로 공장을 다니며 산재사고로 팔이 비틀어지고 후각을 잃는 장애인이 되었지만 군복을 입고 군기 잡는다며 출퇴근때마다 ‘빳다’를 치는 관리자가 부럽고 맞기싫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부친이 이 후보가 공부하는 것을 반대하는 데다 장애인이 된 본인 처지를 비관하며 열일곱 살 때 두 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1년여 만에 중·고교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이 본고사를 폐지하고 학력고사만으로 대입제도를 바꾼 것이 기회가 됐다. 그는 1982년 전액 장학금과 매달 생활비 30만원을 지급하는 중앙대 법학과에 입학했다. 

 

1982년 중앙대 입학식에 제복을 입고 모친과 함께. 이재명 캠프

 

당시 이 후보는 대학에서 받는 공장노동자 월급의 몇배에 이르는 생활보조비로 집에 생활비를 보태면서 정비공으로 일하던 셋째형 이재선 씨에게도 공부를 권유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장학금으로 공부한 이 후보의 형 재선 씨도 좋은 성적으로 생활비를 받으며 대학을 갔고 공인회계사도 합격했다.

 

이 후보는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연수원 성적도 좋아 판검사 임용을 고민했다. 당시 인권운동가였던 노무현 변호사가 한 특강에서 "변호사는 굶지는 않더라"라고 한 말을 듣고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마침내 2010년 성남시장에 당선됐고 시장 당선 10년만에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올라 선 것이다.

 

성남시장에 당선된 그는 취임 직후 '성남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며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무상교복, 청년배당정책 등 파격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성과를 냈다. 이 과정에서 중앙정부, 경기도, 정치권 등과 직접 논쟁을 마다하지 않았고, '리틀 노무현'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그런데 형 재선 씨가 결혼후 서서히 가족들과 발길을 줄이고, 명절은 물론 모친 생신과 부친 제사까지 불참하며 남이 되어갔다. 재선 씨 부부는 이 후보에 대한 열등감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가족간의 불화가 절정에 달했다는 것이다.

 

대선 가도에서 이낙연 후보의 우세를 점쳤으나 이재명 후보가 올해 초부터 승기를 다잡았다. 이낙연 후보가 별안간 두 전직 대통령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밝히면서 개혁 성향 지지층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당내 지지 기반이 없어 '변방의 아웃사이더'로 불렸던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이후에도 좀처럼 기세가 꺾이지 않으면서 전국적 조직을 확보했고 현역 의원을 비롯한 유력 인사들이 대선 캠프에 무더기로 합류했다.

 

이 후보는 성남시장 재선 후인 2016년 10월 박근혜 국정농단이 불거지자 야당 정치인 중 '탄핵과 하야'를 초반부터 강하게 주장하며 개혁성향 시민들 사이에 인기가 치솟았다. 2017년 민주당 대선경선에 나서 문재인 대통령,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이어 3위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했다.

 

이 후보는 2018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해 16년간 보수정당이 차지했던 지사직도 쟁취했다.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무죄로 결정 나면서 대선주자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문재인 대통령,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박근혜 탄핵정국'에서 시위하는 모습
변호사 시절. 이재명 캠프
부인 김혜경 여사와 함께. 이재명 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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