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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교수, ‘중국문화, 말馬 이야기’ 인문학 특강

김광운 기자 | 기사입력 2022/06/22 [00:03]

김미경 교수, ‘중국문화, 말馬 이야기’ 인문학 특강

김광운 기자 | 입력 : 2022/06/22 [00:03]

 

 

"10월 시에 나타난 영천 사람들" 농부시인 이중기, 일제통치에서 미군정통치로 교체되는 시기에 하나의 조국을 꿈꾸는 민중의 삶, 저항의 역사 보강

 

▲ 1강의 특강 후 김미경 교수와 청강생 일동


[국민뉴스=김광운 기자]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상임대표 정대호 시인) 주최, 민족작가연합 대구경북지부(지부장 고경하 시인) 후원으로 18일 경북 영천시 금호읍 원기리(마단길85)에서 농촌 일손 돕기 및 인문학특강, 농부시인의 만남을 진행했다.

 

1"중국문학, 삶이야기" 김미경 교수 특강

 

김미경 교수(이하 김 교수)명품브랜드 속에 말이야기가 담겨 있다하고 이탈리아 토털패션 명품브랜드 구찌’ CUCCI 소개하며 브랜드이미지가 말굽모양이다고 했다. 이어 프랑스 가방패션 명품브랜드 롱샴은 가방 표면에 말을 타고 달리는 경주마기수競走馬騎手가 양각으로 박혀있다.

 

▲ 1강의 특강하는 김미경 교수와 청강생


또한 에스카다명품브랜드는 두 연인이 경마장에서 만나 같은 말에 돈을 걸었던 인연으로 사랑에 빠졌고 이후 우승한 경주마 에스카다이름을 따서 에스카다명품브랜드 회사를 창립했다며 말굽을 양쪽으로 붙여 놓은 이미지의 에스카다명품브랜드를 소개했다. 구기종목(전통 격구’)의 이름을 딴 랄프 로랜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에 애착이 강한 나머지 폴로라는 회사를 설립했다고 명품브랜드사진이미지를 말했다. 이밖에 GODIVA ChocoLatier // REMY MARTIN // HERMES PARIS // PORSCHE // Fer rari // HORSE // KING HORSE // STALION // KING HORSE // HORSE HRAND 등이다.

 

이야기는 말장신구부터 사람과 말이 가까워졌다. 고대 중국은 장군들이 말을 아껴고 말이름을 지여주었고 자신의 한 몸처럼 관리했다. 중국의 넓은 평야지대와 다르게 산악지형이 많은 조선의 봉건주의 문화는 말에 대한 처우가 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선 초기 이성계 장군은 여러 말중 함흥산 말인 유린청을 가장 아끼는 애마愛馬로 정성을 들였고 전장에서 화살을 3대나

맞고도 승리에 기여했고 죽지 않고 31년을 살았던 명마名馬였고 그 말이 생명을 다한 후에는 큰 관을 만들어 주었으며 수많은 전장에서 승리에 기여했던 말에 대한 공로를 추모했다.

 

이성계의 팔준마(명마 8마리)는 중국 여진족 후손 이성계 장군이 여진산, 납씨를 폐주 시키고 홍건적을 평정할 때 탔던 횡운골 명마名馬, 함흥산과 해주전투 외 운봉에서 왜구를 물리지고 승리할 때 탔던 유린청 명마名馬, 여진산에서 탔던 추풍오 명마名馬, 단천산과 해주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용등자 명마名馬, 제주산과 위화도 회군 때 탔던 응상백 명마名馬, 강화도 매도산과 지리산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사자황 명마名馬, 함흥산과 토야동에서 왜구를 물리칠 때 탔던 현표 명마名馬, 안변산에서 탔던 발전자 명마名馬 등이다.

 

봉건시대 무인武人에게 말은 자신과 같고 전장에서 힘과 용기를 주는 존재이며 부와 힘과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종은 몽유도원도를 그린 안견에게 팔준도를 그리게 했지만 임진왜란 때 소실 되어 숙종 때 어느 사대부집에 소장되어 있는 팔준도를 발견하고 다시 묘사해서 그림을 남겼다. 한편 성삼문成三問은 힘 찬 팔준마(명마 8마리)의 용맹한 진군을 찬양하여 팔준도명을 남겼다.

 

▲ 2강의 보강하는 농부 이중기 시인과 청강생


210월 시에 나타난 영천 사람들 - 농부시인 이중기 보강

 

1945년에서 1946년 사이 하지 준장 점령군 미군정은 친일매국노 앞잡이로 관직에 몸담았던 경찰 군인 헌병 등을 앞세우자 총체적 난국이 되었다. 사상 유래 없는 대풍년에 자유시장경제논리로 쌀을 공출한 미군정은 500만석 넘게 일본에 밀수출했다. 이런 이유로 돈이 있어도 쌀을 구할 수 없는 이상한 사회현상이 일어났다. 미군정은 쌀을 다시 배급해 주겠다고 푼돈으로 매입하고 난 뒤 제대로 배급해 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미군정의 독수리발톱 아래 민중은 밥을 먹지 못해 굶고 나뭇잎 솔잎 등 나뭇잎, 나무껍질, 나무뿌리를 산에서 채취해 먹는 일이 많았다.

 

미군놈 믿지 마라” “미군정시대가 일제시대 보다 못하다” ‘일제시대가 차라리 낮다는 불만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다. 1946103일 대구에서 확산된 민중항쟁이 경북 영천 금호까지 확산되었다. 일제 저항시기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지식을 통해 민중들과 함께 궐기할 것을 개봉하고 실천하며 자주독립사회변혁운동을 꿈꾸었다. 그 시기 저항의 중심에 섰던 민중단체는 1920년 영천앱윗청년회 1921년 영천천도교청년회, 영천기독교청년회 1925년 영양청년회, 영천구락부, 농노회, 영천군청년연맹 1927년 영천청년동맹, 신간회 1928년 근우회 등 많은 시민사회단체가 있었다.

 

당시 경북지역 소도시 영천군은 인구 15만 명에 불과했ek. 그러나 6만명 정도가 사회주의적 자주독립사회변혁운동에 기여하려는 신념으로 뭉쳤다. 그리고 그들은 반상의 권위를 버리고 반외세 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NLPDR)을 꿈꾸며 두려움 없이 자주독립운동을 실천했다. 새로운 사회운동에 참여한 대표적 인물은 백기호, 김석천, 김은한, 김석인, 임장춘, 공갑룡(공의권), 차치준, 하수득, 조상호, 백신애, 김순혜, 김영선, 차목삼 등이다.

 

미군정이 통치하던 해방공간시기 민중이 저항했던 가장 큰 이유는 미군정의 잘 못된 쌀 배급정책이 민중의 생명줄을 끊으려했다. 또한 친일매국노 앞잡이를 다시 관직에 재 등용하여 민중을 다시 압살하도록 허용해서 민중이 정신적 두 번이나 사살되는 상황이 됐다.

 

▲ 감자를 캐고 있는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회원들

▲ 매실 수확 후 좌로부터 김산, 고경하, 이훈, 최봉도


농부시인 이중기 강사(이하 이 시인)조선의 모스크바 경북 영천에서 사회주의 지식인들이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민중들과 힘을 모아 일제매국노 잔당의 권력을 빼앗았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였고 며 칠 못가서 미군정과 이승만 경찰과 군대 그리고 서북청년단 등으로 무자비한 학살과 탄압으로 허무하게 무너졌다이 시인은 현시대에 맞는 새로운 혁명이 무엇인가?” “우리에게 통일은 우리 삶의 어떤 것을 혁신할 수 있는가?” 냉철한 마음으로 대응할 것을 되물었다. 한편 이 시인은 일제시대 민중이 저항했던 그 교훈을 다시 배우고 우리가 각성한 것을 통해 다시 민중운동에 기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사무처장 문해청 시인은 참석한 이훈 고문, 김경집 차장, 김태훈 회원, 최봉도 통일운동가, 김산 소설가, 제갈덕주 시인, 김미경 교수, 고경하 시인, 문해청 시인, 정대호 시인, 이중기 시인 등 모든 회원에게 감사하다고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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