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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영 교수, 식민지조선과 여성연쇄살인범 인문학강좌

- 최독건의 『난영』소설을 중심으로 조선말 봉건주의 구여성에서 일제식민지시기 신여성까지 여성해방을 향한 몸짓을 탐구하다 -

고경하 기자, 문해청 기자 | 기사입력 2022/11/27 [00:02]

정혜영 교수, 식민지조선과 여성연쇄살인범 인문학강좌

- 최독건의 『난영』소설을 중심으로 조선말 봉건주의 구여성에서 일제식민지시기 신여성까지 여성해방을 향한 몸짓을 탐구하다 -

고경하 기자, 문해청 기자 | 입력 : 2022/11/27 [00:02]

 

 

▲ 정혜영 교수, 1920년대 식민지조선과 여성연쇄살인범 인문학강좌 기념

 

[국민뉴스=고경하 기자, 문해청 기자]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상임대표 정대호 시인) 주최 및 대구광역시, 대구문화재단, 민족작가연합 대구경북지부 후원으로 11월 정기인문학강좌를 24일 정혜영 교수를 초청해 지난 문학작품을 통해 여성인문학강의를 했다.

 

이날 사무처장 문해청 시인 사회로 고경하 시인이 나는 누구인가()를 낭송했다. 정혜영 교수(경북대)는 일제강점기(매일신보, 1924.10.23.) 기사를 보이면서 김정필은 1905년 출생했고 1924626일 남편살해 범죄로 1심 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19247162심 재판에서 항소 결과 19241022일 무기징역 선고했고 상고를 포기했다는 것을 근거로 1920년 조선사회 최고의 이슈, 김정필 사건을 재조명했다. 김정필은 쥐약으로 남편을 독살한 혐의로 구속되어 형사재판을 받았지만 글을 배우지 못한 무학이고 한글과 일본어를 전혀 몰라 법적 대응할 수 없는 미모의 여성이었다. 김정필 사건은 봉건주의 구여성의 노동인권이 어떻게 처참하게 짓밟혔는가를 사례를 통해 진행했다.

 

▲ 「나는 누구인가」 시(詩)를 낭송하는 고경하 시인의 모습



이시기 봉건주의 구여성은 상습폭력을 당하거나 여성편력이 강해 사창가를 배회하거나 도박이나 마약을 즐기며 가족을 돌보지 않은 남편에 대한 가부장적 권위와 억압에 대한 분노와 도전을 부당한 사회제도와 악법에 대한 정당한 저항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언론은 기사를 통해 구여성과 신여성의 외형적인 미모와 사랑만을 강조했고 본질적인 일제식민지통치의 사회제도 및 악법을 방관했으며 일제치하의 식민지사회집단범죄가 조선백성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핵심적 문제의 개선으로 여론을 확장하지 못했다.

 

봉건주의 구여성 김정필(20)을 비롯한 약자의 처지와 조건에 놓인 구여성은 일제식민지통치의 부당한 사회제도 및 악법의 사슬에 구속된 노예적 환경에서 인간으로 여성으로 해방된 삶을 위해 남편을 쥐약, 수은, 마약 등으로 살해하였다. 일제식민지시기 신여성 민혜원(24)은 조선말 왕의 장례식에서 권총으로 남편을 쏘아 죽였던 사례도 있다. 또 사랑의 벽을 일본제국주의 통치라고 보았고 성악가 윤심덕(사의 찬미), 극작가 김우진은 조선말 봉건주의 유교관습의 벽에 부딪쳐서 바다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자결했다.

 

▲ 정혜영 교수 여성인문학강의에 집중하며 청강하는 수강생 모습

 

지금은 미국제국주의가 간접통치하고 미국(미군)을 대신해 정당정치로 실현하고 직접선거를 통해 대리통치를 펼치는 시기이다. 그러나 지난날 일본제국주의 직접통치 시기는 김정필 서건 재판이 열리는 법원 앞에 모여든 군중(매일신보, 1924.10.11.), 사형미인(동아일보, 1924.9.8.), 김정필 재판광경(시대일보, 1924.10.11.)을 통해 보면 지난 3.1만세운동으로 재연될 것을 두려워했던 일제는 적당한 명분을 찾아 무마시키려고 했다.

 

그 시기 김정필 사건에 대하여 조선의 민중이 불쌍하다는 동정심이 발현되고 여론으로 확산되자 무료변론을 자청한 인권변호사 이인(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위키피디아 사진 참고, 1896~1979년 대구에서 출생했고 나혼대학교 법학과 졸업한 일제시대 3대 민족인권 변호사이다. 특히 그는 6.10만세운동, 고려혁명당사건, 의열단사건, 원산총파업사건, 통의부사건, 정의부사건, 신간회민중대회사건, 수양동우회사건 등과 각종 소작쟁이사건, 필화사건, 설화사건, 친일파나 일본관리의 암살사건 등의 변론을 맡았다.)이 등장했다.

 

1930년 살인범의 남녀 비율을 보면 독일 살인범(93) (91) (2) 남녀백분율(88:12) 남자 100에 대한 여자(13.5), 프랑스 살인범(166) (145) (21) 남녀백분율(86:14) 남자 100에 대한 여자(15.0), 일본 살인범(616) (552) (64) 남녀백분율(90:10) 남자 100에 대한 여자(11.0), 대만 살인범(33) (32) (1) 남녀백분율(97:3) 남자 100에 대한 여자(3.0), 한국 살인범(141) (75) (66) 남녀백분율(53:47) 남자 100에 대한 여자(88.0)이며 1930년 조선에서 최초로 실시된 인구조사결과(구도 다케키의 조선특유의 범죄’, 1934년에서) 인용했다.

 

▲ 정혜영 교수(경북대) 강의 후 상임대표 정대호 시인이 대담하는 모습

 

? 그처럼 많은 조선여자들이 남편을 살해하는가? 에 대한 구도 다케키와 의사(나가사키의과대학 졸업, 1905.12. 한성병원 산부인과 부장, 1907. 경성부인병원 개원, 1941. 경기도 의사회 회장)가 밝히는 조선 특유의 범죄를 보면 - 남편 살해범에 대한 부인 과학적 고찰 - 구더 다케키 지음, 최재목 김정곤 옮김 - 2016년 영남대출판부 번역서 및 최재목, 김정곤, 구도 다케키의 의학과 황도 유교에 관한 고찰, 의사학 제243(2015.12.)를 참고할 수 있다. 또한 구도 다케키의 조선 여성 살인범 분석 근거로 체자레 롬브로조(1835.11.6.~1909.10.19.)의 범죄학 이론은 손바닥 손금을 예로 들고 있다.

 

조선여성의 남편살해 현상의 이유는 조선의 전근대적 풍습으로 강제결혼과 조혼이다. 난여(亂影)소설가 최독견(1901.3.15.~1970.6.5.) 난영1(동아일보, 1927.9.30.) 소설을 보면 김정필 사건(미인, 20, 교육 받지 못함, 구여성, 강제결혼, 남편독살 - 쥐약)과 민혜원 사건(미인, 24, 고등교육 받음, 신여성, 자유연애, 남편 권총살해)을 소설의 소재로 삼았다. 1920년대 조선사회와 신여성에서 1923년 창간된 조선 최초의 여성잡지 신여성을 소개했다. 이밖에 입센의 인형의 집번역서, 신여성창간(1923), <<엘렌 케이의 자유연애론 등장>>, <<마가렛 생거의 산아제한론>>이 있다.

 

1920년대 조선사회와 신여성, 그리고 구여성은 1920년대 한국사회에서 신여성과 구여성은 대립적 존재가 아니라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였다. 신여성 민혜원의 자립심과 자유로움은 구여성 김정필의 현실이 얼마나 불합리한가를 드러내었다. 구여성 김정필이 겪는 폭력적 현실은 신여성 민혜원이 시대의 히로인이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증명했다. 민혜원과 짐정필은 서로 격리된 채 대척점에 위치한 것이 아니라, ,구문화가 충돌하던 1920년대 조선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김정필 사건구여성 남편살인사건 → 『난영신여성을 왜? 대비했을까? ‘민혜원의 남편살해 장소는 조선말 왕의 장례식 공간(장례식 풍경과 사진1927.6.10.)이었다. 1920년대 조선과 유교이데올로기는 충()이었다. 1920년대 조선의 가부장적 유교이데올로기는 신하는 왕을 따르고 아들은 아버지를 따르고 아내는 남편을 따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혜원이 남편을 죽이는 모습(난영소설 속 삽화)은 왕의 장례식을 훼손하고 남편을 살해했으며 이는 유교이데올로기의 위반이 된다.

 

그러므로 당시 사회적 환경은 여성비하의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고 있으며 신여성1920년 소설을 통해 조롱당하고 있는 신여성의 모습을 그린 만화가 뒷받침하고 있다. 1920년대 조선남성작가들은 소설 속에서 신여성의 이미지를 방탕, 허영심, 무절제함, 자기중심적, 강렬한 욕망, 파멸 등으로 그렸다.

 

1920년대 조선의 신여성 등장을 보면 1926년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는 나혜석과 남편, 1926년 강제결혼을 거부하고 자살한 두 연인(윤심덕과 김우진), 1927년 남편을 살해하는 신여성이 등장하는 소설 난영이 있다. 1920년대 조선의 신여성들 목소리로 허물어지기 시작했던 봉건적 가부장제에서 여성은 주체적인 의 목소리를 내는 1인칭 의 시점으로 보았지만 남성은 가부장적 권위의 약화로 위기감이 밀려왔다고 보았다.

 

1920년대 조선과 자아를 찾는 여성들의 상징적 대명사로 미인 김정필 남편 독살(쥐약)사건과 미인 민혜원 남편 권총살해사건을 거론하고 있다. 결국 척박한 일제식민지시기 조선총독부통치가 민족과 민중을 탄압하고 분열시키는 모순을 갖고 있을 때 가부장제도의 족쇄가 노예여성으로 노동인권이 짓밟히는 사회적 문제로 나타났다는 것이 정평이다.

 

 

나는 누구 인가

 

- 디트리히 본회퍼(1906~1945.4.9.) 독일 브레슬라우 출생 -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 나오듯 침착하고, 활기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지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하게 뭔가를 갈망하다

병이 들고 손들이 나의 목을 조르고 있는 듯 숨 가쁘게 몸부림치고

빛깔과 꽃들과 새소리를 갈구하며

부드러운 말과 인간적인 친근함을 그리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그리고 위대한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고

저 멀리 있는 친구들을 그리워하다

힘없이 슬퍼하고 기도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에 지치고

텅 빈, 무기력하게 그 모든 것과 이별할 채비를 갖춘 그런 존재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타인 앞에서는 위선자이고 자기 자신 앞에서는 경멸할 수밖에 없는 가련한 약자인가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신은 안다

내가 그의 것임을

 

 

2019310일 오래된 미래 간행, 류시화 엮음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에서

 

 

* 덧붙임 :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 독일의 루터교 목사신학자이며 1941년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하여 1943년 체포되고 19454.9.새벽 플로센베르크 강제수용소에서 교수형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묘비에는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라고 쓰여 있으며 "악을 보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가 악이다"라는 말과 "미친 운전자가 행인들을 치고 질주할 때, 목사는 사상자의 장례를 돌보는 것보다는 핸들을 뺏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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