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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조공(爲曹公) 작서(作書) 여손권(與孫權) 감상

조조가 강(强)과 온(穩),양면을 적절히 사용,손권을 압박한 뛰어난 글

하태형 칼럼 | 기사입력 2011/05/01 [15:41]

위조공(爲曹公) 작서(作書) 여손권(與孫權) 감상

조조가 강(强)과 온(穩),양면을 적절히 사용,손권을 압박한 뛰어난 글

하태형 칼럼 | 입력 : 2011/05/01 [15:41]
▲ 승승장구하는 조조 적벽에서 대패히다
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중, 위(魏)나라 출신이 아닌 오(吳)나 촉(蜀) 출신 중 남긴 글이 전해지는 사람은 제갈공명(諸葛孔明)이 유일합니다.

반면에 위(魏)나라의 경우는 조조(曹操) 자신을 포함하여, 조식(曹植), 조비(曹丕), 그리고 건안칠자(建安七子)등 많은 사람의 빼어난 글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것으로 미루어보아도 당시의 삼국(三國)간 국력의 차이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겠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소개드린 적벽전(赤壁戰)에 이어, 조조(曹操)가 적벽전(赤壁戰)이후 건안칠자의 한사람인 완우(阮瑀)를 시켜 오(吳)의 손권(孫權)에게 보낸 <위조공(爲曹公) 작서(作書) 여손권(與孫權)>이란 글을 소개드리겠습니다.

이 글은 삼국지(三國志)의 세 주인공간의 편지글 중에서는 유일하게 전하는 글이라,사료(史料)로서의 가치도 높으며,또한 당시 문명(文名)이 드높았던 건안칠자(建安七子)의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명문(名文)입니다.

이글은, 당시 북쪽은 통일하였으나 남방까지 통일하기에는 힘이 부족하여 기다리고 있던 조조(曹操)가,적벽전(赤壁戰)이후 손권(孫權)에게 ‘위(魏)나라가 힘이 약해 전쟁에서 패한 것이 아니다’란 메시지를 전달하고,나아가 손권(孫權)을 달래어 유비(劉備)와의 동맹을 깨트리고자 쓴 일종의 외교문서입니다.

당시 조씨(曹氏) 가문은 오(吳)나라와 겹사돈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조조(曹操)의 질녀가 손책(孫策)의 어린 동생 손광(孫匡)에게 시집갔으며, 조조(曹操)의 둘째아들 조창(曹彰)은 손분(孫賁: 손권의 사촌)의 딸과 결혼함).

글은 먼저 이러한 인척관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간교한 무리(유비(劉備)를 지칭)들 때문에 사이가 소원해졌음을 지적합니다.

그 다음, 전일의 적벽전(赤壁戰)이 주유(周瑜)의 수군에 의해 패한 것이 아니라,전염병이 돌아 스스로 배를 불태우고 돌아간 것이라고 주장하고는, 손권(孫權)이 혹여 승리하였다고 착각하여 섣부른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양자강이 수천리에 달하기 때문에 위(魏)나라가 마음만 먹으면 적벽(赤壁)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든 도강(渡江)할 수 있고, 오(吳)는 수천리 강길을 모두 지킬 수는 없지 않느냐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겸손한 편지글을 보고 교만함을 가지지 말기를 다시금 지적한 후,유비와의 동맹을 포기하면, 강남(江南)은 손권(孫權)에게 맡길 테니,자신과의 연대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유비(劉備)를 택할 것인가, 택일하라는 압박으로 끝맺고 있습니다.

강(强)과 온(穩), 양면을 적절히 사용하여 상대를 압박하는 뛰어난 글입니다.

<위조공작서여손권(爲曹公作書與孫權)>

“위(魏)와 오(吳), 양국간의 관계가 단절된 이래로 삼년이 흘렀으나 단 하루도 지난날의 우호관계를 잊은 적이 없습니다. 또한 겹혼인(姻媾)의 의리(義理)로 말미암은 은애(恩愛)의 정이 아직도 깊은 반면,서로 어긋나고 뜻을 달리한 원한은 아직 깊지 않다고 생각되는바,내가 이러한 마음을 품고 있다면 군(君)께서도 어찌 같은 마음이 아니겠습니까?
(離絕以來,于今三年,無一日而忘前好。亦猶姻媾之義,恩情已深, 違異之恨,中間尚淺也。孤懷此心,君豈同哉!)
....

나는 德이 없는데도 지위는 높고 책임은 막중하였는데, 다행이도 나라가 태평해 지는 운(運)을 만나 천하를 평정하고 오랑캐들까지 나라로 모여드는 복(福)을 누리고 있습니다....그러나 오(吳)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여러 간교한 무리를 때문에 관계가 소원해져, 분을 삭이지 못해 잠을 뒤척이는 적도 많았으나,다시 생각해 보면 사소한 일들을 지워버리고 예전의 좋은 관계를 복원한다면,조(曹)와 손(孫) 두 가문이 영화롭게 복을 후세에까지 이어갈 것이란 저의 평소의 신념을 밝혀줄 날이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전일, 적벽(赤壁)의 전투에서는 역질(疫疾)이 돌아 우리 스스로 배를 불태우고 돌아오니,스스로가 역질(疫疾)이 도는 땅을 피한 것이지, 주유(周瑜)의 수군이 우리를 좌절시킨 것이 아니며,또한 강릉(江陵)을 포기한 것은, 물자가 떨어지고 곡식이 바닥나있는 곳을 더 이상 점거할 이유가 없으므로 스스로 군대를 돌린 것이지 주유(周瑜)가 우리를 패퇴시킨 것이 아닙니다.

형주(荊州)땅은 본래 나의 땅이 아니어서 전쟁이 끝난 후 여타 땅과 함께 군(君)에게 돌려주려 생각한 바이니,터럭만큼도 위(魏)나라에게는 손해가 없는 바, 적벽(赤壁)에서 망설이며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습니까?
(孤之薄德,位高任重,幸蒙國朝將泰之運,蕩平天下,懷集異類,喜得全功,長享其福。....以是忿忿,懷慚反側,常思除棄小事,更申前好,二族俱榮,流祚後嗣,以明雅素中誠之效。...昔赤壁之役,遭離疫氣,燒舡自還,以避惡地,非周瑜水軍所能抑挫也。江陵之守,物盡穀殫,無所復據,徙民還師,又非瑜之所能敗也。荊土本非己分,我盡與君,冀取其餘,非相侵肌膚,有所割損也。思計此變,無傷於孤,何必自遂於此,不復還之。)
...

지난해(209년) 초현(譙縣)에서 배를 건조한 것은, 내 몸소 배를 타고 구강(九江)까지 가서,소호(漅湖)의 경치를 관람하고 양자강의 백성들을 안정시키고자 함이었지,군(君)의 땅에 들어가 전쟁을 하고자 함이 본시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점은, 군(君)의 부하들 중에, 적벽(赤壁)의 일을 큰 영광으로 여겨,스스로의 계략이 맞아들었다 하고 앞으로 서쪽에는 근심이 없을 것이라 여겨서 옛날의 우정으로 돌아가지 않으려 할까 하는 점입니다.... 군(君)의 명철함으로 위(魏)의 병력및 국토를 오(吳)와 비교해 본다면, 우리가 힘이 약하기 때문에 다시금 원정하지 않고 양자강의 땅을 조금 떼어주고는 만족하게 지내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는 않습니다!!

만일 군(君)이 수전(水戰)의 우세함을 믿고, 양자강을 따라 요새를 지키면서 우리 위군(魏軍)의 도강(渡江)을 막으려 한다면 그 또한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저 수전(水戰)은 전선(戰線)이 길게는 천리까지 이르며,
따라서 전략(戰略) 또한 수만가지니, 과거 월(越)나라가 삼군(三軍)을 도강(渡江)시킬 때도 오(吳)나라는 막아내지 못하였으며, 한(漢)나라 한신(韓信)이 몰래 하양(河陽)을 건널 줄은 위왕(魏王) 표(豹)는 꿈에도 몰랐던 것입니다. 양자강과 황하가 광활하니, 방어선이 길면 지키기 어려운 법입니다.
(往年在譙,新造舟舡,取足自載,以至九江,貴欲觀湖漅之形,定江濱之民耳,非有深入攻戰之計。將恐議者大為己榮,自謂策得,長無西患,重以此故,未肯迴情。...以君之明,觀孤術數,量君所據,相計土地,豈勢少力乏,不能遠舉,割江之表,宴安而已哉?甚未然也!若恃水戰,臨江塞要,欲令王師終不得渡,
亦未必也。夫水戰千里,情巧萬端。越為三軍,吳曾不禦;漢潛夏陽,魏豹不意。江河雖廣,其長難衛也。)
...

일마다 형편이 있는 법이니, 말만으로 모든 일을 다할 수는 없지만, 양국간 옛날의 우호관계를 재건하려 함에 위협을 가해 오(吳)나라를 압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오히려 염려스러운 점은, 이 편지글을 잘못 해석할까 함입니다.

즉 지난날 적벽(赤壁)에서 군사를 돌려 돌아와, 먼곳에서 이렇듯 편지를 보내 이해를 구하다보니,말이 겸손하고 뜻이 낮아서, 우리 위(魏)나라의 힘이 다했다고 여겨, 오(吳)의 교만함이 더해질까,그리하여 서로의 관계재건을 위한 움직임에 보탬이 되지 않지 않을까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군(君)께서는 옛날의 사례들을 본보기로 삼아, 스스로 헤아려 보심이 마땅할 것입니다....만일 군(君)께서
안으로는 자포(子布: 吳의 건국공신)을 제거하시고 밖으로는 유비(劉備)를 쳐서 거짓된 마음이 없음을 드러내어 과거의 우호관계를 회복한다면, 강남(江南)땅은 군(君)에게 길이 맡기리니,높은 지위와 중한 작위는 당연히 보장되어, 위로는 한(漢) 왕조(王朝)에 강동(江東)을 돌아보는 수고로움을 없애고,아래로는 백성들로 하여금 전쟁으로부터 구하는 福을 안겨주는 것이라, 군(君)은 그 영예를 누리고,나는 그 이로움을 향유케 되니 어찌 유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일, 요행으로 전쟁에 한번 이긴 일로 인해 나의 지극한 정성을 소홀히 하여,이 두 사람을 단죄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이른바 소인(小仁)으로 대인(大仁)을 해치는 격이니,대인(大人)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여서는 안될 것입니다. 다만, 자포(子布)는 오(吳)나라 신하이니,살려두고자 한다면, 나 또한 원한을 접고 그로 하여금 군(君)을 섬기게 하여 훗날의 공(功)을 취할 수는 있으니,유비(劉備)만을 사로잡아도 충분하다 여기겠습니다. 이 두가지 길을 열어두었으니,살펴서 하나를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凡事有宜,不得盡言,將修舊好而張形勢,更無以威脅重敵人。然有所恐,恐書無益。何則?往者軍逼而自引還,今日在遠而興慰納,辭遜意狹,謂其力盡,適以增驕,不足相動,但明效古,當自圖之耳。... 若能內取子布,外擊劉備,以效赤心,用復前好,則江表之任,長以相付,高位重爵,坦然可觀。上令聖朝無東顧之勞,下令百姓保安全之福,君享其榮,孤受其利,豈不快哉!若忽至誠以處僥倖,婉彼二人,不忍加罪,所謂小人之仁,大仁之賊,大雅之人,不肯為此也。若憐子布,願言俱存,亦能傾心去恨,順君之情,更與從事,取其後善。但禽劉備,亦足為效。開設二者,審處一焉。)

...(後略)"

외교문서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글입니다.조조(曹操)는 한(漢) 황실의 승상(丞相)벼슬을 하고 있으므로 스스로를 ‘고(孤)’라 칭하고,상대방인 손권(孫權)은 ‘공(公)’ 정도도 아닌, ‘군(君)’으로 하대하고 있음도 당시의 대의명분에 따른 외교관계문서상 특기할 만하다 하겠습니다.
<하태형/서예평론가/(주)소너지 대표이사/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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