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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상병 사건' 수사 축소 '물증' 나왔다..외압 드러나

국방부 장관 최측근 군사보좌관이 '수사 축소' 지침 보내
불법적 수사 외압 증거 차고 넘쳐..이종섭 ‘꼬리 자르기’ 퇴진
임성근, 수사 한 번 받지 않고 소장 계급 유지 정책 연수 떠나
진상 밝히려던 박정훈만 '집단항명 수괴혐의'로 기소돼 고초

정현숙 | 기사입력 2023/11/18 [00:03]

'채상병 사건' 수사 축소 '물증' 나왔다..외압 드러나

국방부 장관 최측근 군사보좌관이 '수사 축소' 지침 보내
불법적 수사 외압 증거 차고 넘쳐..이종섭 ‘꼬리 자르기’ 퇴진
임성근, 수사 한 번 받지 않고 소장 계급 유지 정책 연수 떠나
진상 밝히려던 박정훈만 '집단항명 수괴혐의'로 기소돼 고초

정현숙 | 입력 : 2023/11/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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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3일 오후 서울 전쟁기념관 앞에서 고 채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촉구하는 해병대 예비역 전국 연대 1차 집회 모습과 채상병 사건 축소 의혹 당사자 박진희 국방부 장관 군사보좌관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의 대화. 연합뉴스 그래픽

 

“확실한 혐의자는 수사의뢰, 지휘 책임 관련 인원은 징계로 하는 것도 검토해주십시오.”

 

국방부 장관의 최측근 군사보좌관이 채상병 순직 사건을 수사하던 해병대 사령관에게 ‘수사 의뢰 대상을 줄일 것’을 요구하는 이런 문자를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그동안 ‘누구는 넣고 누구는 빼라’는 지시를 하지 않았다던 국방부의 해명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항명죄로 기소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 재판에 제출된 대화 기록을 보면, 지난 8월1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을 밀착수행하는 군사보좌관 박진희 육군 준장(이후 소장 승진)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오간 상기의 문자 내용은 대통령실의 외압 정황을 더욱 뚜렷하게 해준다.

 

1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채상병 사건 조사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의 주장은 사실과 달랐다. 중앙군사법원에 제출된 기록에 따르면 이 장관의 군사보좌관 박진희 준장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지난 8월 1일 낮 12시6분 이 같은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 8월 초는 박진희 준장과 김계환 사령관이 해병대 수사단의 결과 보고와 경찰 이첩으로 이른바 '항명 사태'가 있었던 때다.

 

당시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은 이틀 전인 7월 30일 오후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을 포함한 8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명시해 경찰에 이첩하겠다고 보고하고 결재까지 받았다. 그러나 이종섭 장관은 하루 만인 7월31일 갑자기 이첩 보류를 지시하고 우즈베키스탄으로 출장을 떠났고 그 이튿날 군사보좌관 박진희 준장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에게 '확실한 혐의자'만 경찰에 넘기라는 메시지를 보내 수사대상을 축소할 것을 요청한 것이다. 

 

수사의뢰 대신 징계를 검토해달라고 한 ‘지휘책임 관련 인원’은 사실상 무리한 수사를 지시해 채상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책임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 등 상급자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계환 사령관은 “지금 단계에서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나도 부하들 전부 살리고 싶은데 아쉽다”라며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보좌관직에서 물러나 1계급 승진한 박진희 소장은 연합뉴스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을 이야기한 것이고 장관께서 말씀한 건 전혀 없다”라고 말했지만, 터무니없는 해명이란 지적이 나온다. 국방장관과 거의 24시간 동행하고 분신처럼 움직이며 수행비서 역할을 하는 군사보좌관의 언행은 실질적으로 '윗선의 의사'로 여겨진다는 것이 군 안팎의 시각으로 당연히 이종섭 장관의 지시로 인식된다.

 

불법적 수사 개입의 증거가 차고 넘치는데도 이종섭 전 장관은 ‘꼬리 자르기’로 물러났고 이달 초 단행된 장성 인사에서 채상병 사망 사건 지휘·책임자들은 그 누구도 징계는 물론 징계성 인사조처를 받지 않았다. 박진희 보좌관은 오히려 소장으로 진급해 육군 56사단장으로 부임했고 무리한 지시의 책임자 임성근 해병대 1사단장은 수사 한 번 받지 않고 소장 계급장을 달고 정책연수를 떠났다.

 

외압에 저항해 채상병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려던 박정훈 전 수사단장만 '집단항명 수괴혐의'로 기소돼 고초를 겪고 있다. 박 전 수사단장은 법률대리인을 통해 '임성근 사단장 등 8명의 간부에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한 부분을 빼라'는 국방부의 압박을 받았다고 폭로했고, 수사 외압에 대통령실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지난 8월 26일 5만 명의 시민이 고 채상병 사망사건의 국정조사 실시를 국회에 청원했다. 또한 더불어민주당과 군인권센터 등 시민단체가 수사방해 및 사건은폐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요구서를 제출했지만, 기약 없이 국회 국방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한겨레는 16일자 사설에서 "이렇게 전도된 정의가 있을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외압 의혹이 공수처에 고발돼 있는 만큼 철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수사가 미진하면 국정조사와 특검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진상을 밝혀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국민적 염원이 담긴 국민동의 청원을 집권당이 깔고 뭉개고 있는 것 자체가 의혹의 정점을 더욱더 키우는, 대통령 연루설을 점점 의심케 하는 행태"라며 "이렇게 철옹성같이 지키려고 하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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