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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엄치고 멱감던 시골 자연수영장 방죽

<옛시골추억9>헤엄치고 물장구치던 시골 방죽은 훌륭한 자연수영장

김환태 칼럼 | 기사입력 2009/08/01 [21:44]

헤엄치고 멱감던 시골 자연수영장 방죽

<옛시골추억9>헤엄치고 물장구치던 시골 방죽은 훌륭한 자연수영장

김환태 칼럼 | 입력 : 2009/08/01 [21:44]

마린보이 박태환과 아시아 물개 조오련

전신운동으로 수영처럼 좋은 운동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전국체전은 물론이고 아시안 게임,올림픽등 국제경기 대회에서도 단일종목으로 수영만큼 메달이 많이 걸린 종목도 없다. 자유형,평영,배영,접영등 종목별로 개인전,단체전에 100미터,200미터,400미터,800미터,1500미터 등 단계별로 경기를 하다보니 수영강국은 수영종목이 메달밭이다.

수영은 기술,최첨단,과학적 수영복,끈기,폐활량등에 의해서도 실력이 좌우되지만 가장 중요한것은 힘과 체격조건이다. 따라서 국제경기 대회에서 우승은 힘과 체격이 좋은 서구 국가들이 독식하다시피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도 7관왕을 차지한 미국의 펠프스 선수등 호주와 서유럽 국가들이 메달을 휩쓸었다.

이처럼 서양 선수들의 전유물이었던 수영에도 변화가 일었다. 경제발전에 따른 국가적 지원에 기술을 접목한 강도높은 훈련에 힘입어 체력조건의 열세를 딛고 수영의 불모지였던 아시아 선수들이 서양선수들과 메달경쟁을 벌이기에 이른것이다. 경제강국 일본과 인해전술 중국이 수영에서 금맛을 본데 이어 우리나라도 올림픽 참가사상 사상최초로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가 베이징 올림픽 자유형 400미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데 이어 200미터에서 동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박태환 선수의 올림픽 제패로 우리나라도 드디어 수영강국의 대열에 들어선 것이다. 박태환 선수가 '2009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서는 부진한 성적을 보였지만 지난 베이징 올림픽 제패로 우리나라 수영도 이제 세계적 수영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그렇다고 박선수가 올림픽을  제패하기 이전에 우리나라가 수영 후진국이었다는 것은 아니다. 아시아에서 만큼은 일본과 중국에 못지않은 수영실력을 자랑해 왔다. 아시아의 물개로 이름난 조오련 선수가 1970년과 1974년 아시안게임에서 자유형 400미터와 1500미터를 연이어 석권하면서 수영한국의 위상을 아시아 전역에 떨친바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물개 조오련 선수를 길러낸 시골방죽

마린보이 박태환 선수가 세계를 제패하였다면 조오련 선수는 아시아를 연이어 제패한 것이다. 박태환 선수와 조오련 선수는 수영한국을 세계와 아시아 만방에 떨친 영웅들이다. 박태환 선수는 사시사철 수영이 가능한 전천후 실내 수영장이 넘쳐날 만큼 훈련시설이 잘 갖추어진 상태에서 타고난 자질에 강한 승부욕과 집념,개인적인 노력,훌륭한 코치진,선진기술,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에 의해 세계적인 수영선수로 우뚝섰다.

이에반해 조오련 선수는 수영 인프라라고는 전무한 시골에서 코치진도 없이 타고난 힘과 체력,근성,토종 헤엄치기를 통해 아시아 물개로 이름을 떨쳤다. 조오련 선수가 아시아의 물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마을 주변 방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마을 방죽은 비록 여름에만 수영이 가능했음에도 조오련 선수에게 훌륭한 자연 수영장이자 훈련장이었다. 조오련 선수가 방죽에서 헤엄을 치고 실력을 기르던 1960~70년대만 해도 시골에서 수영을 할 수 있었던 곳은 논에 물을 대기 위해 축조한 방죽 저수지와 강,하천,계곡속 웅덩이 같은 소,그리고 개천에 막아놓은 보였다.

특히 주변에 강이나 큰 하천,소가 없었던 마을 아이들은 방죽이나 못에서 헤엄을 쳤다. 개천이나 도랑,그리고 보를 막아놓은 곳에서는 물이 얕아 땅에 손을 짚고 발을 퉁당거리는 물장구나 물싸움,멱을 감는외에 헤엄을 칠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방죽이나 저수지는 깊이가 보통 5미터에 수십미터 되는데다 넓이나 길이가 수백미터 이상 되는게 많아 헤엄치기에는 매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다만 너무 물이 깊고 고여있어 깊이 들어갈수록 물이 차거워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데다 수영이 미숙할 경우 익사할 수 있는 위험이 높고 물뱀과 거머리가 많다는 점이 흠이었다.

헤엄치고 물장구 치던 시골방죽은 훌륭한 자연 수영장

이처럼 훌륭한 자연수영장이면서도 위험이 많기 때문에 부모들은 방죽이나 저수지에서 헤엄치는것을 한사코 말렸다. 특히 헤엄치다 사람이 빠져 죽었거나 몸을 던져 사람이 자살한 방죽은 물귀신이 있어 저승으로 같이 데려가기 위해 물속으로 끌어 당기기 때문에 절대 헤엄을 쳐서는 안된다고 다그치고 헤엄을 치는게 알려지면 대나무로 된 간짓대를 들고 방죽으로 쫒아와 간짓대로 방죽물을 쳐가며 "죽고싶어 환장했냐 이놈아, 어서 나오지 못해 이놈아"하며 고래고래 고함을 치며 길길이 날뛰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모속을 썩혀 가면서도 무더운 여름이면 방죽에 붙어 살았다. 방죽에서 헤엄을 칠때는 가장 먼저 방죽 주변에서 마른쑥을 뜯어 귀마개를 만든다. 귀에 물이 들어가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는 귓병인 귀젖이 난다고 하여 물이 귓속으로 들어 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른쑥을 한쪽 손바닥에 놓고 다른 손바닥으로 비비면 솜같이 되어 이것을 뭉쳐 귀에 막으면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쑥귀마개가 만들어 지면 가장 학년이 높은 아이가 앞에나와 평소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여름 방학전에 헤엄을 칠때 생길 수 있는 심장마비나 몸이 마비되는 쥐가 나지 않도록 반드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어 주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던 보건체조 가운데 무릎운동,팔다리 운동,허리운동,숨쉬기 운동을 시킨다. 준비운동이 끝나면 남자,여자아이 가릴것없이 옷을 홀랑벗고 알몸으로 방죽물로 뛰어든다.

먼저 몸에 물을 적신후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이는 별로 없다. 헤엄을 못하는 아이들은 방죽가에서 퐁당거리거나 물싸움을 하기도 하고 물이 방죽에 넘치면 빠져 나가도록 만들어 놓은 여수터로 몰려가 폭포처럼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장난을 치기도 한다. 헤엄에 익숙한 아이들은 자유형,뒤집어서 치는 배영,그리고 개헤엄으로 실력을 자랑하거나 방죽가 바위나 나무위로 올라가 내려 뛰기도 한다. 오늘날 말로 다이빙을 하는 것이다.

몇몇 아이들은 방죽끝을 오가는 내기를 하여 부모들의 애간장을 녹이기도 하였다. 이처럼 여름철이면 헤엄치는 아이들로 넘쳐났던 시골 방죽이 요즈음에는 찌그러진 함석판에 페인트 글씨가 벗겨진 '위험 경고판'만 자빠질듯 비스듬히 서있을뿐 헤엄치는 아이들을 볼수가 없다. 시골에 아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간혹 더위를 이기지 못한 시골노인 한두명이 사타구니에서 오줌누듯 물이 줄줄 떨어지는 무릎아래까지 내려오는 잠뱅이를 입고 물속에 몸을 담갔다 일어섰다하면서 "으이고 시원혀"하는 소리만 외롭게 들리는 시골방죽,그곳에서 헤엄치던 그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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