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근본주의자가 믿음을 가지고 미워할때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변화를 거부하고 배타적인점

이철 칼럼 | 기사입력 2011/07/30 [07:50]

근본주의자가 믿음을 가지고 미워할때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변화를 거부하고 배타적인점

이철 칼럼 | 입력 : 2011/07/30 [07:50]
▲ 노르웨이 희생자 추모식에 바쳐진 조화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끔찍한 테러는 범인이 자신을 크리스천이라고 밝힌 데다 경찰이 그를 기독교 근본주의자라고 발표해 기독교계에 큰 충격을 주고 있다.

크리스천이 계획적인 집단살해를?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다른 점이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수많은 질문이 기독교를 향해 던져진다.

근본주의와 원리주의란 영어의 Fundamentalism을 의미한다.기독교 근본주의는 성경과 예수를 재해석하려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대,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전통적 교리를 고수하는 것을 뜻한다.

이슬람 원리주의는 무슬림이 향락과 물질을 숭배하는 서양문명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엄격한 도덕정신을 살리는 것만이 이슬람생존의 길이라고 주장하는 교리다.

근본주의는 기독교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반면 원리주의는 서방국가 특히 미국문화를 반대하고 있다.근본주의는 국내를, 원리주의는 외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항상 기독교의 적이 누구인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처음에는 진화론자가 적이었었다. 다음에는 공산주의였다. 미국에서 일어난 매카시선풍이 바로 근본주의자들이 적극 참여한 캠페인이다.

매카시선풍이 시들해지자 이번에는 낙태와 동성연애자들을 기독교의 적으로 낙인찍었으며 이를 반대하는 정치적 힘을 키워야 할 필요성을 느껴 공화당 보수파를 지지하기 시작했다.레이건과 부시(2세)의 대통령 당선이 바로 근본주의자들의 성공적인 정치참여의 좋은 예다.

기독교의 근본주의는 무엇이 문제인가. 변화를 거부하고 배타적이라는 사실이다.이 때문에 극우보수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고 여기에는 이민반대와 다문화주의 반대가 따르기 마련이다.미국 남부에서 최근 이민반대가 심한 것도 이 지방이 근본주의자들의 정신적 고향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유럽은 원래 이민국가가 아니다.경제호황기에 노동력 필요에 의해 이민을 받아들였던 것인데 이들 이민이 기독교문화에 동화하지 못하고 사회 안에 별개의 사회를 구성하며 급진적인 움직임마저 보이자 반 이민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이슬람 증오심으로 번지고 있다.

결국 유럽이 기독교의 근본주의와 이슬람의 원리주의 대결장으로 치닫고 있다.덴마크와 스웨덴, 노르웨이를 여행해보면 거리 잡상인에 흑인이나 중동인 들이 많아 “언제 이 사람들이 여기까지 흘러들어 왔지?”하고 놀라게 된다.

호메이니의 이란혁명, 아프카니스탄의 탈레반 학정, 아프리카와 이라크, 레바논,팔레스타인 피난민을 동정하여 스칸디나비아 국들이 이들을 받아들이다 보니 이슬람 이민이 갑자기 늘어난 것이다.

근본주의자나 원리주자 모두 자신들만이 유일한 진리의 종교라고 믿는 것이 동화불능의 원인이다.열심히 믿는 것이 참 신앙은 아니다. 무엇을 믿느냐, 어떻게 믿느냐가 더 중요하다.

노르웨이의 비극은 믿음 가진 사람이 남을 미워하면 그 증오의 폭발력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증명한 대표적인 케이스다.노르웨이의 테러범이 한국을 단일문화권 국가로 살기 좋은 나라로 꼽은 것은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도 이제 126만 명에 이른다.더구나 한국 기독교계는 근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미국과는 달리 이민역사가 전무한 한국은 노르웨이의 비극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철/미주 한국일보 고문/전 주필, 편집국장>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