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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학 운운하며 동북공정돕는 소중화사관론

헌법 영토조항"한반도와 부속도서 포함,민족사 활동무대로 삼는다"로 개정해야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기사입력 2011/08/01 [17:27]

민족사학 운운하며 동북공정돕는 소중화사관론

헌법 영토조항"한반도와 부속도서 포함,민족사 활동무대로 삼는다"로 개정해야

윤복현 객원논설위원 | 입력 : 2011/08/01 [17:27]
▲ 대한민국 헌법이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규정하고 있는 영토조항을 "한반도와 부속도서를 포함하여 민족사의 활동무대로 삼는다."로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 남북한이 통합하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땅의 주인으로서 조선족이 거주하고 있는 본래의 우리영토인 만주.연해주지역까지 회복할 수 있게 된다. 100년전 국제법을 위반하고 지나국과 일본이 협약하여 지나국이 강탈한 간도는 마땅히 대한민국 영토로써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면 우리의 영토로 회복할 수 있다. 간도회복의지없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대통령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국내 친일세력부터 국적을 박탈시켜 일본열도로 추방시키는 일이 급선무다

진짜 대한민국 정부라면 맨날 독도는 우리땅 타령만 할 것이 아니라 박정희군사정권 당시 한일간 맺었던 독도영유권을 포기해 버리고 공동어로구역까지 설정하자고 합의한 반주권적인 한일독도협약 폐기를 선언하고 독도에 대한 군사적 방어태세를 강화하고 일본의 국제사법재판소의 제소에 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입장에서 박정희가 독도영유권 포기하고 공동어로구역설정에 승인했으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국제법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명분을 제공한 국내 친일세력을 1차적으로 처벌.추방해야 하는 이유다. 국내에 득세하는 일제 식민지 논리를 대변하는 친일 지식인들을 비롯한 친일파들에 대한 재판없는 부당재산압수와 국적박탈을 통한 추방이 급선무다. 그래야 평생 값없이 이름없이 조국을 찾겠다며 헌신한 수 많은 항일광복운동가들 앞에 후손들로서 부끄럽지 않는 일이다.

일제 식민지를 정당화하는 논리를 대변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친일 자식인 단체들과 이들를 대변하는 정치인.지식인.검사.판사들 모두 처벌.파면.추방대상들에 해당한다. 그리고 헌법에 이러한 조항을 명시해야 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친일파들이나 친일부역자 자식들이 역사앞에 반성과 사죄없이 일제시대부터 독점해 온 엄청난 부당재산과 정치권력을 장악해 왔다는 사실이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이 독도 영유권 문제를 쟁점화하기 위해 방한을 강행한 가운데 1일 서울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한 시민단체 회원들이 일 의원들의 입국을 반대하는 집회를 갖고 있다. 자민당 소속 신도 요시타카(新藤義孝)·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중의원 의원,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참의원 의원 등 3명은 이날 김포공항을 통해 입국을 시도했으나 정부는"대한민국의 이익이나 공공의 안전을 해치는 행동을 할 염려가 있다고 인정할 이유가 있는 사람에 대해 입국을 금지할 수 있다."는 출입국관리법 제11조1항3호에 의거, 이들의 입국을 금지시켰다.

결국 국제문화화하려던 일본의 의도대로 이명박정부가 걸려 들었는지 협조를 해 주었는지 모르겠지만, 목적을 위해서 사전에 장기적으로 철저히 준비하는 특성을 가진 일본은 이 문제를 국제적 문제로 부각시키켜 독도영유권을 차지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까지 끌고 갈 것이 분명하다.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지나대륙에서 개국했다 역사논리는 지나국의 동북공정론에 불과하다

민족사학을 운운하는 일부 재야 역사매니아들이 고구려.백제.신라.가야가 지나대륙에서 개국했다는 역사논리를 펴기에 사료적으로나 고고학적으로 전혀 맞지 않는 어불성설이며, 지나국의 한반도침략과 지배논리로 악용되는 동북공정을 돕는 소중화사관론에 불과함을 밝히는 바이다. 독도는 마땅히 대한민국 영토임에도 불구하고 품어야 할 만주지역의 우리 동포들인 조선족을 짱개운운하며 배타시하는 일부 개쌍도인들의 영남권력의 지배이데올로기로 활용되는 독도찾기가 아니라, 오히려 100년 전 대한민국 영토였던 간도찾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이다. 개쌍도인들이 통일을 반대하고 간도찾기에 무관심한 이유는 통일이 되고 만주까지 하나가 되면 인구적으로 도저히 지들이 지배할 수 없다는 쪽수논리에 기인한다.

단군조선을 계승한 부여에서 나온 고구려는 압록강지역 환인에서 일어난 나라

(북)부여는 단군조선(대부여)47대 고열가 종가인 고(해)모수가 단군조선의 황통을 이어 받아 세운 나라이며, 해모수의 부여는 한나라를 몰아 내고 민심을 업고 부여 5대 단군에 오른 동명성왕 고두막에게 황통이 넘어 갔고, 고두막의 황통은 아들 고무서에게 계승되었고,고무서 단군의 황통은 고무서 단군의 유언에 따라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에게 황통이 이어 졌다. 그래서 고구려는 부여의 장자국(천제지자국)인 것이다.

고구려의 무덤양식은 적석총이다. 압록강지역의 토착무덤양식이 바로 적석총인데, 부여에서 나온 고추모세력이 압록강지역 환인세력을 통합하여 고구려를 개국하면서 토착인들의 무덤양식인 적석총을 수용한 것이다.

고로 고구려는 압록강지역에서 일어나 초기에 남만주.한반도북부지역을 통합한 후에 서서히 고구려의 옛땅인 구려하(요하)지역으로 진출하여 지나지역을 차지한 나라이지, 지나지역에서 일어난 나라가 결코 아닌 것이다.[광개토태왕비문]에서 "천제지자 추모왕께서 북부여에서 나와 골본 서쪽산에 성을 쌓았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역사적 사실임이 입증된다.

한반도지역에서 일어난 대백제는 부여의 구태세력이 온조.비류세력을 통합한 나라다.

고구려에 나온 소서노가 요동에 세운 비류나라 어하라를 떠난 온조세력이 서해를 거쳐 인천으로 들어 와 서울 한강지역에 세운 십제로 비류를 떠난 비류세력이 통합되었고, 비류와 소서노는 온조세력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온조 십제는 금강지역의 마한을 정벌하여 마한을 익산지역으로 밀어 낸다.

그리고 205년경에 요동에서 한반도로 들어 온 구태세력에게 왕권을 상실한다. 205년 당시 부여의 구태세력은 웅진에 고마성을 쌓고 백제를 세운 후에 마한연방을 복속하고 백제가 마한연방의 수장국이 되었다. 그리고 백제연방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서울지역의 한성백제가 근초고왕 시기에 백제연방을 정벌하고 수장국이 되었다. 이 때 마한은 다시 영산강지역으로 천도하게 된다. 근초고대왕이 백제연방군을 지휘하며 고구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에 한강이남에서 군대사열을 할 때 중앙을 의미하는 황색깃발을 사용한 건 웅진지역의 백제지배세력이 근초고대왕 세력이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후한 말 부여왕 구태는 요동태수 공손탁의 딸과 혼인하고 100가의 무리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 대방고지에 나라를 세우니 백가제해라 하였다."청나라 황실사서[만주 원류고]

"동명(고두막)의 후손으로 신의가 돈독한 구태가 요동태수 공손탁의 딸과 혼인하고 나라를 세우니 동이강국이 되었다..백제는 시조 구태에게 1년에 4번 제사지내며 웅진에 고마성을 쌓았다..백제는 정복지를 담로로 삼고 22담로지역에 왕의 자제나 왕족을 담로의 왕으로 임명하여 다스렸다"[북서]등 지나문헌 기록내용들이다.

지나문헌[수서 백제전]에 "그 시조 구태의 사당을 고마성에 짓고 일년에 4번 제사지낸다(立其始祖仇台廟於國城, 歲四祠之)"는 문구가 나온다. 이를 보면 백제는 대방고지에서 건국하여 온조'십제'와 마한연방을 정복한 A.D 205년경에 수도를 고마(웅진)에 두고 그때부터 담로제를 시행하였다.

[양서 백제전]"왕성을 고마라 부르고, 읍을 일컬어 담로라 하는데 중국의 군현과 같다. 백제에는 22담로가 있는데 모두 왕의 자제나 종친으로 분할 통치하였다."號所治城曰固麻 謂邑曰擔魯 如中國之言郡縣也 其國有二十二擔魯 皆以子弟宗族分據也」

[구당서]"백제의 영역은 바다건너 북으로 고구려와 접하고 서해를 건너 절강(양자강 지역)에 이르고, 남으로는 바다 건너 왜(일본열도)에 이른다." 구태세력이 세운 백제는 본국 한반도지역 외에 일본열도나 지나지역에도 22명의 후왕(侯王)들을 두었던 것이다.

지나남부의 '남제'라는 나라의 역사책 ‘남제서’에는 북위 장군으로 훗날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아버지도 참전하였던 백제와 북위의 전쟁에 관한 기록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북위 오랑캐가 또다시 기병 수십만을 동원하여 백제를 공격하니, 동성왕이 장군 사법명ㆍ찬수류ㆍ해례곤ㆍ목간나를 파견해 북위군을 기습 공격하여 그들을 크게 무찔렀다.” 이 기록을 보면 백제가 물리친 적의 규모만 해도 기병 수십만이라고 했다. [남제서]에는 동성대왕이 북위를 물리쳤다는 것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490년에 북위가 쳐들어 오자 사법명 장군 등이 군사를 거느리고 밤에 번개처럼 기습 공격하여 큰 승리를 거두었으며, 목간나 장군은 적의 성문과 선박을 때려 부수는 공을 세웠다고 되어 있다. 또한 동성대왕은 사법명을 비롯한 여러 장군과 신하들에게 벼슬을 주었는데,지나대륙의 동해안 담로지역을 다스리는 직책으로 제후급이다.

이 처럼 백제의 경우 후한말에 요동지역을 떠나 한반도(대방고지=대방의 옛땅=해외동경)지역으로 이주하여 서해를 따라 웅진(공주)에 고마성을 쌓고 백제를 개국한 부여의 구태세력이 서기 205년 한강지역의 온조 십제를 통합하고 구태왕조을 실현함으로써 마한연방을 통합한 근초고대왕을 기점으로 대백제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백제역시 개국연대를 높이고 통합차원에서 시조는 고구려인 온조로 삼은 것이다.

그러니 백제를 온조백제(한반도백제)와 비류백제(일본백제)로 구분하는 어불성설의 역사논리는 펴지 말아야 한다. 대백제(구다라)라고 했을 때는 모두 그 왕통이 부여의 구태세력을 의미한다. 구태후손 근초고대왕 시기에 일본열도를 포함한 마한연방을 완전히 정벌,복속함으로써 대백제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나문헌에서 백제가 시조 구태에게 1년에 4번 제사지내고 22담로를 설치하여 왕의 자제들이나 왕족들을 파견하여 다스렸다고 기록하고 있는 내용인 것이다.

고로 백제세력을 지역적으로 구분한다면 광개토태왕비문에 기록된 것 처럼 한성백제(백잔)와 웅진백제(이잔)으로 구분될 뿐이다. 광개토태왕이 수군과 육군으로 백제를 대대적으로 정벌할 때 웅진지역의 백제세력은 대거 일본열도로 이주하여 근구수대왕이 태자시절에 일본열도를 평정하고 세운 야마토왕조(대화)로 귀속됨으로써 한반도백제와 일본백제로 분리되는 것이다.

초원.지나지역에서 한반도로 이주하여 개국한 신라는 흉노.선비족이 부여.마한세력의 사로국을 통합한 나라다.

해민족 정통사서 [桓檀古記 高句麗國本紀]에는 신화적 기법으로 박혁거세의 출생의 비밀을 감추고 기록한 [삼국사기]기록과는 달리 상세히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환단고기]를 위서취급하는 자들이나 신라가 지나대륙에서 개국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얼마나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세력들인지를 알 수 있다.

斯盧始王仙桃山聖母之子也 昔有夫餘帝室之女婆蘇 不夫而孕 爲人所疑 自嫩水逃至東沃沮 又泛舟而南下抵辰韓奈乙村 時有蘇伐都利者 聞之 往收養於家 而及十三 岐祥然夙成有聖德 於是辰韓六部共尊爲居世干 立都徐羅伐 稱國辰韓 亦曰斯盧

"斯盧 (사로)의 始王(시왕)은 仙桃山(선도산)의 성모의 아들이다. 옛날 夫餘帝室(부여 제실)의 딸 婆蘇(파소)가 있었는데 남편없이 아이를 배었으므로, 사람들의 의심을 받아 嫩水(눈수)로부터 도망쳐 東沃沮(동옥저)에 이르렀다. 또 배를 타고 남하하여 辰韓(진한)의 奈乙村(나을촌)에 와 닿았다. 이때 蘇伐都利(소벌도리)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 소식을 듣고 가서 데려다 집에서 길렀다. 나이 13세에 이르자, 지혜는 빼어나고 숙성하고 성덕이 있는지라, 이에 진한 6부 사람들이 존경하여 居世干(거세칸)으로 삼고, 도읍 徐羅伐(서라벌)을 세우고 나라를 辰韓(진한)이라 칭하고, 또한 斯盧(사로)라고도 하였다." 신라의 후예가 세운 청나라 황실사서 [만주원류고]에는 신라의 중심영역이 근세조선의 경상도.강원도임을 명확히 기술하고 있다.

[통전 신라전]新羅 -新羅國, 魏時新盧國焉, 其先本辰韓種也。辰韓始有六國,稍分為 十二,新羅則其一也。初曰新盧 , 宋時曰新羅 , 或曰斯羅。 其國在百濟東南五百餘里,亦在高麗東南, 兼有漢時樂浪郡之地。 東濱大海。 魏將毋丘儉討高麗,破之, 奔沃沮。其後復歸故國, 留者遂為新羅焉, 故其人雜有華夏、高麗、百濟之屬,兼有沃沮、不耐、韓、濊之地。其王本百濟人,自海逃入新羅,遂王其國。其國小,不能自通使聘。 (이하 생략)

"新羅國은 魏나라 때 新盧國(신로국)이였다. 그 선조는 본래 辰韓의 일종이였다. 辰韓은 처음에 6개 나라였다가, 점차 12개로 나뉘어져서, 新羅는 그 하나를 말한다. 처음에 新盧(신로)라 했으며, 宋나라 때는 新羅로, 혹은 斯羅(사라)라고 했다. 그 나라는 백제의 동남쪽 500여리에 있었으며, 또한 고구려의 동남쪽이고, 漢나라 때는 낙랑군의 땅을 겸하고 있었다. 동쪽으로는 大海에 접하였고, 魏나라 장군 毋丘儉(관구검)이 고구려를 치니, (주민들은) 옥저로 도망하였다. 그 후에 고국으로 복귀를 하였고, 잔류자들이 신라를 형성하였다. 그러므로, 신라는 화하(華夏)족과 고구려.백제의 속민들로 잡스럽게 이루어 졌으며, 沃沮, 不耐, 韓, 濊와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 신라의 왕(석탈해)은 본래 백제(마한)사람으로. 바다(海: 일본열도의 완하국)로부터 도망을 하여 신라로 들어가, 마침내 왕이 되었다. 신라는 처음에 나라가 작아서, 스스로 통신사(通使聘)을 보낼 수가 없었다..." (생략)

[삼국사기-신라본기-지증왕 조]기록과 관련하여 모씨에서 김씨로 창씨개명한 모용선비족으로 법흥왕(모진=>김원종)의 아버지 지증왕 때 국호를 신라로 공식화했으며, 순장제도를 금지하고 농경문화를 정착시키는 등 초원문화를 버리고 농경문화로 접어 들게 되었다.

부여법에 "남녀간에 음란한 짓을 하거나 부인이 투기하면 모두 죽였다." 그래서 박혁거세을 임신한 부여공주 파소는 부여를 떠나 진한6촌으로 망명할 수 밖에 없었다. 신라가 시조로 삼았던 박혁거세은 부여공주 파소의 아들로서 부여에서 정분을 통하여 혼인전에 임신을 하여 사람들의 의심을 사자, 부여를 떠나 옥저를 거쳐 배를 타고 동해안으로 내려 와 진한에 도착하여 박혁거세를 낳았고, 박혁거세가 13세가 되었을 때 진한(진조선)유민들의 마을인 진한6촌장들이 화백회의를 열어 만장일치로 왕으로 삼으니 사로국의 시조다.[환단고기]

박혁거세의 어머니의 이름은 파소로 부여공주다. 아마도 연대기상으로 계산해 보면 한나라를 몰아내고 부여영웅이 되어 부여 5대 단군에 오른 동명성왕 고두막의 아들로서 부여6대 단군 고무서의 첫째 딸이 아닌가 싶다. 둘째 딸은 동부여에서 망명해 온 고추모와 재혼한 소서노다. 고로 소서노는 박혁거세의 이모가 되는 셈이고, 고추모는 박혁거세의 이모부가 되는 셈이다.

박혁거세 어머니 파소는 혼인 전에 정분으로 박혁거세를 임신하여 백성들의 의심과 눈총을 받게 되자, 흑룡강의 갈래인 눈강(눈수)을 따라 동옥저를 거쳐 배를 타고 동해안으로 내려 와 경주의 진한6촌으로 들어 오게 된 것이다. 진한6촌장이 괜히 13세 소년에 불과한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하겠나? 박혁거세의 출신성분 자체가 부여 단군의 외손이기 때문이였다. 파소는 사로국의 시왕모로 모셔졌다.

부여에서 동해안을 타고 경주지역으로 들어 와 진한6촌과 연합하여 사로국을 세운 부여의 박혁거세 세력과 일본열도에서 경주지역으로 들어 온 박혁거세 세력과 연합하여 석탈해 왕조를 세운 석탈해 세력(마한세력)은 모두 부여.마한세력으로 구성된 사로국이다.

이 사로국을 무너뜨리고 신라를 세운 기마세력이 바로 4세기 고구려와 전쟁과정에서 대패하여 흩어져 동해안을 타고 경주지역으로 들어 온 모용선비흉노족으로 구성된 전연잔당이다. 지나에서 세운 신나라가 망한 후 한반도로 들어 온 흉노계 김일제 성씨로 바꾸고 김씨 행세를 하며 신라 왕노릇을 한 것이다.

고로 박씨들과 석씨들은 자신들이 단군3조선 중에 부여(진조선).마한(마조선)족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제천의식.형수취수제 등 부여의 풍습과 동일한 유라시아 초원세력인 흉노.선비족은 모두 단군조선(부여)의 갈래들이다.

사로국(신라)는 본래 석.박.김씨들이 돌아 가며 왕위를 세습하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마세력인 모용선비흉노족이 무력으로 박.석씨 세력을 제압하고 '골품제'를 통하여 왕위를 독점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개국연대를 높이고 통합차원에서 시조는 부여인 박혁거세로 삼은 것이다. 훈족이 세운 헝가리도 국가의 뿌리연대를 높이고 원주민들인 백인기독교세력과 융합차원에서 자신들의 시조를 노아의 둘째 야벳으로 삼았다.

[지도]고구려 최전성기에 해당하는 광개토태왕-문자명태왕 시기의 고구려 최대 영향권 추정도



이것이 진정한 3국 통일이며 해땅(밝땅=배달)민족의 대통합이다. 따라서 지나지역의 고구려.백제영토를 모두 당나라에게 넘기고, 고구려를 계승한 대진국(발해)이 강성해지자 대동강이남에 그친 신라의 3국 통일은 역사날조용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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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빛포구 2011/08/02 [10:20] 수정 | 삭제
  • 탐욕에 눈이 멀어 내 뱃때지 채우기에만 온 정신을 쏟고 있는데 울 할아버지와 울 할머니를 버리고 남의 신을 붙들고 애원하며 온갖 비리를 양산하며 복마전에서 살고 있는데 권력을 움켜쥔 놈들이 무슨 정신이 있겠습니까... 만주와 연해주지역이 우리네 땅이라는 사실을 알아도 중국이 우리의 모든 것을 자기네 것이라고 우기며 동북공정을 펴나가고 있어도 나몰라라 하고 있는데 ....참으로 한심하고 갑갑하고 울화통만 터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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