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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사라진 추석, 우리가 받은 징벌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9/30 [23:57]

추석이 사라진 추석, 우리가 받은 징벌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9/30 [23:57]



미국에 온 후, 우리나라의 명절이란 것이 저와 별로 관계가 없다는 생각을 꽤 오랫동안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게 바뀐 것이 아마 지호와 지원이가 이 세상에 오고 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명절이란 것이 어떤 때는 꼭 지켜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그 핑계로 그냥 자연스럽게 가족들이 모이게 되는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 성당에서 추석을 기억할 수 있도록 조상에게 감사하는 미사를 추석이 낀 주에 드리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살면서 추석보다는 추수감사절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되긴 했지요. 여기선 추석 명절이라고 해서 쉬게 해 주는 것도 아니고, 추수감사절은 보통 연휴가 되니까요. 아무튼, 추석은 성당에서 조상에 대해 감사 미사를 드리는 정도로 기념되는 그런 시간이었지만, 올해는 그것조차도 허용되지 않는 그런 시간이 되고 있습니다.

조상이나 하늘에 수확에 대해 감사하는, 어쩌면 인간이 농경을 시작한 이후로 매년 반복됐을 이런 제례가 지금까지 만 번은 있었을까요? 한반도에서는 몇천 번은 반복됐겠지요. 그러나 그것은 이제 과거의 일이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인간이 산업화를 통해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를 바탕으로 한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은 우리에게 많은 재화를 보다 쉽게 갖고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고 있는 이 별에 대한 착취, 그리고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 것이었고, 우리는 그 시스템 안에서 그냥 거기에 익숙해져 버렸고, 우리가 그 시스템 안에서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 인간을 찾아온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은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만들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이 별에 어떤 짓을 해 온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시스템 안에서 어떤 식으로 살고 있었던건지를.

추석은 우리가 은혜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에 감사하는 시간이지요. 우리가 조상님을 생각하며 그 은덕에 감사한다는 것은,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별이 갖고 있는 어떤 '질서'에 감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질서를 뭉개 버린 건 우리 자신이었고, 우리는 이제 그 질서를 파괴한 것에 대한 징벌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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