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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적 대통령과 '보통' 대통령

프랑스를 생각한다

손우현 칼럼 | 기사입력 2012/05/17 [04:56]

제왕적 대통령과 '보통' 대통령

프랑스를 생각한다

손우현 칼럼 | 입력 : 2012/05/17 [04:56]
▲ 대통령에 당선된 프랑수아 올랑드와 패배한 사르코지
프랑스는 200년이 넘는 민주주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오랜 군주제와 중앙집권제의 전통 때문인지 서방 세계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막강한 대통령제를 유지해 왔다.

1958년 출범한 제5공화국 헌법 하에서 프랑스 대통령은 국민의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되는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는 경우 상위 득표자 2명에 대해 2차 투표를 실시하여 결정한다.

이는 유권자의 사표를 방지하고 대통령직의 정통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이렇게 선출된 대통령 (le Président de la République)은 외교, 국방, 내치에 걸치는 방대한 권한을 행사하는 한편 의회의 불신임으로부터 면제되는 초월적 지위를 누린다.

단 총선에서 여소야대 현상이 발생하면 대통령은 야당 출신 총리를 임명하여 동거 정부(cohabitation)가 출범하게 되는데 2002년부터 7년이던 대통령 임기를 하원의원과 같이 5년으로 단축하고(중임 가능) 같은 해에 대통령 선거와 하원 선거를 실시함으로 동거 정부의 출현 가능성은 매우 적어졌다.

한편 시대의 변천과 함께 제왕적인 프랑스 대통령의 위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어제 취임한 사회당 출신의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 프랑스 대통령은 ‘보통 대통령’이란 기치 아래 당선됐다.

그는 대선 유세 과정에서 자신은 대통령에 당선되면 항상 프랑스 국민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애쓰는 ‘보통’ 대통령(un président ‘normal’)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프랑스 언론은 그의 이러한 발언을 제왕적인 프랑스 대통령직을 비군주화(démonarchiser)하겠다는 뜻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올랑드의 ‘보통 대통령’ 구호는 사치스러운 lifestyle로 프랑스 국민의 빈축을 샀던 사르코지 전 대통령과 자신을 차별화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

2007년 자신의 당선 축하연을 샹젤리제의 고급 식당인 Fouquet's와 억만장자 친구의 호화 요트에서 가졌던 사르코지는 임기 5년 내내 부자들의 대통령이란 비난을 면치 못했다.

이에 비해 올랑드는 5공화국의 대통령을 세 명이나 배출한 국립행정학교(ENA, 프랑스의 고등고시 합격자 교육 기관)출신의 엘리트이지만 중산층이 사는 파리 15구의 임대 아파트에 현재의 동거녀와 함께 살며 동네 식당, 빵집 등을 즐겨 찾는 서민적인 이미지의 사람이다. 그는 대통령 취임 후에도 이 아파트에 계속 거주하고 싶다고 하나 경호 당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의전과 허세를 줄이고 국민과 가깝게 소통하려는 올랑드의 서민 대통령 구호가 자신의 뜻대로 제대로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문제는 다른 유럽 국가라면 모르지만 프랑스의 국민들이 진정으로 ‘보통’ 대통령을 원하냐는 것이다. 프랑스 국민들은 아직도 정치권력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France Soir紙는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대통령을 ‘군주제의 대용품(un ersatz monarchique)’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어 대통령은 ‘대통령답기’를 원하며 또 그러기 위해서는 직책에 걸맞는 위엄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고 논평했다.

프랑스 좌파 지식인이며 미테랑 대통령 보좌관을 지낸 자크 아딸리 (Jacques Attali)는 “올랑드도 미테랑처럼 단호하고, 국민과 거리를 두는 권위적인 지도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단순함에 집착하여 위엄은 유지하면서 매우 투명한 대통령직을 수행할 것 같다”라고 내다보았다.

<손우현/한림대 객원교수/전 주(駐)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서울평화상 문화재댠 사무총장, 코리어헤럴드 기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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