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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당나라 굴종 담긴 최치원의 양위표(2)

‘대동(大同)’사회를 이루기엔 자신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태형 고전칼럼 | 기사입력 2012/05/18 [17:51]

신라의 당나라 굴종 담긴 최치원의 양위표(2)

‘대동(大同)’사회를 이루기엔 자신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하다’

하태형 고전칼럼 | 입력 : 2012/05/18 [17:51]

오늘은 <양위표(讓位表)>의 세 번째 단락입니다.이 단락에서 최치원은 진성여왕을 대신하여, 자신의 즉위후 여러 가지 좋지 않은 일들이 계속 되었음을 열거하고,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 바로 자신의 덕이 부족한 것인바, 이제 그만 보위에서 물러나고 싶다는 말을 대신합니다.

3. 是以直至臣兄贈太傅臣晸。遠沐皇澤。虔宣詔條。供職一終。安邊萬里。而及愚臣繼守。諸患倂臻。始則黑水侵疆。曾噴毒液。次乃綠林成黨。競簸狂氛。所管九州。仍標百郡。皆遭寇火。若見劫灰。加復殺人如麻。暴骨如莽。滄海之橫流日甚。昆岡之猛焰風顚。致使仁鄕變爲疵國。此皆由臣守中迷道。馭下乖方。鴟梟沸響於鳩林。魚鱉勞形於鰈水。况乃西歸瑞節則鷁艦平沈。東降冊書則鳳軺中輟。阻霑膏雨。虛費薰風。是乖誠動於天。實懼罪深於海。羣寇旣至今爲梗。微臣固無所取材。日邊居羲仲之官。非臣素分。海畔守延陵之節。是臣良圖。久苦兵戎。仍多疾瘵。深思自適其適。難避各親其親。

이러한 전통은 신의 형(오빠)인 증태부(贈太傅) 정(晸: 49대 헌강왕(憲康王))에 까지 이르러,황상의 혜택을 멀리서나마 입고, (황상이 내리신) 조칙을 숭상하고 베풀어, 주어진 직무를 받들길 평생을 하나같이 하니, 만리밖 변방까지 편안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신이 왕위를 계승하자 여러 우환이 한꺼번에 이르니,처음에는 흑수(黑水: 아마도 발해(渤海)를 가리키는 듯)가 강역을 침범하여 독액(毒液)을 내뿜었으며, 다음에는 도적(綠林)들이 무리를 이루어, 다투어 소란을 일으키니, 관할하는 구주(九州)및 그에 속한 백군(百郡)들이 모두 구화(冦火: 도적의 난리)를 만났습니다.

겁화(劫火)를 만난데 더하여, (이백의 <촉도난(蜀道難)> 구절처럼) ‘사람베기를 마치 삼베 베듯(殺人如麻)’하니, <좌전(左傳)의 구절처럼> ‘백골이 풀더미처럼 널려있는 지경(暴骨如莽)’이 되었습니다. 창해(滄海)의 바닷물이 범람하고(滄海橫流), 곤강(昆岡)의 사나운 불길은 바람에 흩날려서, 인의(仁義)를 숭상하던 고장이 병폐에 허덕이는 나라로 변하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신이 중용을 지키는 도리에 어둡고(守中迷道), 백성을 다스리는 방법을 그르친 데(馭下乖方)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평소에 조용한) 올빼미(鴟梟)조차도 ‘구림(鳩林: 경주의 옛이름)’에서는 어지러이 날라다니며,심지어 물고기와 자라(魚鱉)도 ‘접수(鰈水: 우리나라의 별칭. 한반도가 가자미(鰈)같다하여 불리웠다 함)’에서는 사는 것이 힘들어 질 지경입니다.

하물며 서쪽으로 서절(瑞節: 옥으로 만든 부절(符節)로서 여기서는 당에 보내는 신라의 사절을 의미)을 보낼 때는 익함(鷁艦: 귀인(貴人)이 타는 배)이 침몰하고, 동쪽으로 단서(丹書: 단사(丹砂)로 써서 공신에게 내리는 서책, 여기서는 당이 신라에 보내는 칙서를 의미))가 내릴 때는 봉초(鳳軺: 봉황을 새겨서 장식한 수레)가 중도에서 되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슬을 막고 단비(膏雨)가 내려야 할 시기에 헛되이 훈풍(薰風)만 불고 있으니,이 모든 것은 신의 정성이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한 때문인 바, 실로 그 죄가 바다보다 깊을까 두렵습니다. 왜구(倭寇)들이 (<시경. 대아(大雅)편>에 노래한 바) ‘지금위편(至今爲梗)’, 즉 우리를 병들게 하였으니, 미천한 신은 진실로 재목을 구할 곳이 없습니다.

희중(羲仲: 요임금때 동방을 다스리던 관리)의 관직에 있는 것이 신 본래의 분수가 아니고,(춘추시대 오나라 계찰(季札: 오왕(吳王) 수몽(壽夢)의 아들로 어질다는 명성이 있어서 수몽이 왕으로 세우고자 하였으나, 사양한 채 받지 않자 연릉(延陵)에다가 봉하였으므로 연릉계자(延陵季子)라 불리움)처럼 연릉(延陵)의 절조(節操)를 지킴이 바로 신으로서 취할 좋은 계책입니다. 전쟁에 시달린지 오래인데다가, 몸에 병까지 많아, (<장자(莊子)>에서 말한 바,) "스스로에게 마음에 든 것을 마음에 둔다(自適其適)"는 말을 깊이 생각하매,(<예기(禮記)>에서 말한 바) 자기부모만을 부모로 여기는(各親其親) 지경을 피하기 힘듭니다.

이 문단에서도 최치원은 자신의 문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습니다.대부분의 설명을 본문문장 해석에 같이 표기하였습니다만, 추가로 설명이 필요한 문장부분이 바로 ‘羣寇旣至今爲梗。微臣固無所取材。’입니다. ‘羣寇(군구)’는 ‘여러 도적들’ 또는 ‘왜구(倭寇)’를 뜻하며,이러한 왜구(倭寇)에 의한 피해를 <시경. 대아(大雅)편>의 <상유(桑柔)>편 ‘至今爲梗(지금위경)’이란 구절을 용전(用典)하여 표현합니다.
國步蔑資(국보멸자) : 나라 형편 궁핍하여 물자가 없어
天不我將(천부아장) : 하늘은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네
...
誰生厲階(수생려계) : 악을 매일 같이 더하여
至今爲梗(지금위경) : 오늘 이 괴로움에 시달리게 하시는가 (梗: 病也)
즉, 여기서 ‘경(梗)’은 '괴로움'이란 뜻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그런데 이 ‘至今爲梗’중 ‘경(梗)’은 본래 ‘줄기’, ‘가지’란 뜻이므로, ‘왜구가 이미 이르러 경(梗)이 되었으니’, 그 다음 ‘微臣固無所取材’, 즉 ‘미천한 신은 진실로 재목을 구할 곳이 없습니다’라고 재치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문장, ‘深思自適其適。難避各親其親。’은 최치원의 문장력이 돋보이는 명문구중 하나입니다. 먼저 나오는 ‘자적기적(自適其適)’은 <장자(莊子).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말로서, ‘스스로에게 마음에 든 것을 마음에 둔다’, 즉 속박됨 없이 자신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연인으로서의 삶을 말하는 구절입니다.

그 다음 구절에 나오는 ‘각친기친(各親其親)’은 <예기(禮記). 예운(禮運)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여기서 공자님은 자신이 그린 이상적인 사회, ‘대동(大同)’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큰 도(道)가 행해지니, 천하가 공평무사하여...고로 자신의 부모만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신의 자식만 자식으로 여기지 않아...바깥문을 잠그지 않고 살아가니 이를 일러 ‘대동(大同)’ 이라 한다.(大道之行也,天下為公。...故人不獨親其親,不獨子其子...故外戶而不閉,是謂大同。)

이에 비해 보다 현실적인 사회를 공자님은 ‘소강(小康)’이란 사회로 정의합니다.바로 오늘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자주 말하는 ‘샤오캉’이 이것을 의미합니다.이제 큰 도(道)가 이미 숨어버려 천하가 각자 가문만을 위하니, 자기부모만을 부모로 여기며, 자기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겨,재물과 힘은 자기만을 위해 쓰니...이를 일러 ‘소강(小康)’이라 한다.(今大道既隱,天下為家,各親其親,各子其子,貨力為己...是謂小康)

따라서 이 문장에서 최치원은 ‘각친기친(各親其親)’이란 단어로 바로 위에서 말한 ‘소강(小康)’사회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深思自適其適。難避各親其親。’이란 문장으로서,‘자신이 지닌바 자연인으로서의 역량을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소강(小康)’사회를 피하기 어렵다, 즉 ‘대동(大同)’사회를 이루기엔 자신의 역량이 너무나 부족하다’란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태형/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경제학 박사(뉴욕주립대)/금감위 자문위원/고전(古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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