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뉴스=김광운 기자]한국소비자단체연합(약칭 한소연, 회장 조태임)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이와 함께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오랫동안 의사 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의료사고 처리특례법’을 당근책으로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한소연은 모든 의료사고에 획일적으로 의료인의 형사면책을 허용하는 ‘의료사고 특례법’이 의대 정원확대 추진의 협상 카드로 이용되어서는 안되며, 무관한 제도들의 무리한 추진이 아닌 의료체계 정상화, 의료소비자 권익과 의료인보호를 위한 의료인 책임보험을 내실화하는 방향의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며 아래와 같이 한국소비자단체연합이 공동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성명서 전문은 아래와 같다.
< 성 명 서 >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면서 이와 함께 의료사고에 대한 의료인의 법적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으로 오랫동안 의사 단체가 줄기차게 요구해왔던 ‘의료사고 처리특례법’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정부는 “작년 11월부터 의료계, 환자단체, 법률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의료분쟁 제도개선 협의체>를 구성하여 총 9회에 걸친 회의를 통해 의견을 수렴한 바 있다”며 사회적 논의를 통해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한 것처럼 발표하였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보험 가입 시 형사처벌을 면제하자는 정부의 주장과 입증책임전환이 먼저라는 환자단체 등의 주장으로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같은 해 12월 6차 회의에서 의료사고 처리특례법 제정 논의를 중단하고 의료감정제도 개선에 대해 집중논의 하기로 하였다. 그 이후 정부는 태도를 바꿔 협의체 결정을 철저히 무시하고 의료계의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한 내용으로 이 법의 제정을 강행하고 있다.
추진되고 있는 ‘의료사고 처리특례법’은 의료인이 책임보험·공제와 종합보험·공제에 가입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특히 응급환자에 대한 의료행위나 중증 질환, 분만 같은 필수의료행위의 경우 환자가 중상해를 입어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게 된다.
의사의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처벌을 면제하는 「의료사고 처리특례법」과 같은 입법사례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미국, 영국, 호주 등 영미법계와 독일, 프랑스, 일본 등 대륙법계 국가 모두 의료사고에 대해 형사처벌하는 법들이 존재하고, 실제 형사처벌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만, 여러 국가에서 경과실에 따른 업무상과실치상죄(업무과실과실치사제는 제외)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하지 않거나, 엄격한 요건에서만 형사처벌을 하는 법(제도)을 시행하거나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10년 경과실에 의한 업무상과실치상죄는 “의료사고피해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이 제정·시행되면서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서 조정 또는 중재가 성립하면, 형사처벌을 하지 않은 특례 제도(반의사불벌죄)를 이미 시행하고 있다.
정부가 의사의 의료사고에 대한 형사면책을 목적으로 하는 ‘의료사고 처리특례법’ 제정 이유로 제시하는 논거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이 법은 현재 의대 정원 확대와 맞물려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양자는 본질상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한 협상 카드로 의사들이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형사면책을 주겠다는 것이다.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인 절대적으로 부족한 의사 정원을 늘리는 대신 의사들의 형사처벌을 면해주겠다는 것은 절대적 약자로서 보호해야 할 환자나 의료소비자의 권리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둘째, 이 법은 교통사고가 났을 때 운전자가 보험에 가입하면 사망사고·뺑소니 같은 중과실 사고를 제외하곤 형사처벌을 면해주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쌍방 간 불시에 발생하는 것인 반면 의료행위는 전문가인 의사의 일방적 행위로서, 의료사고 발생 시 쟁점은 ‘의사가 주의 의무를 다했는가’이다. 이는 모든 의료사고가 부득이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의료사고를 일반화하여 형사면책을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의료과실을 획일적으로 면책하는 것은, 의사의 기본적인 주의 의무를 방기하게 함으로써, 환자를 무방비의 위험에 노출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통사고 처리특례법」 상 “업무상 과실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해 피해자가 중상해에 이르게 된 경우에 공소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한 부분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된 바 있다. 현재 필수의료 행위 관련하여 피해자가 중상해 및 사망에 이르러도 공소 제기를 할 수 없게 한 것은 위 교통사고 처리특례법에서 위헌으로 판결된 표현과 정확하게 일치하여 이미 위헌이다.
셋째, 의협과 정부(보건복지부)는 이 법이 도입되지 않으면 필수 의료는 회복할 길이 없다고 하면서 의료사고 처리특례법 제정을 강력히 추진하고 있다. 생명을 다루는 필수 의료 종사자는 주의 의무를 방기해도 형사면책 시켜주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필수 의료의 회복은 형사면책과 무관한 사안으로, 양자는 서로 논리적 연관성이 없는 사안이다. 어떤 나라도 필수 의료 회복에 형사면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곳은 없다. 생명은 그 어떤 경우에서도 우선 보호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책임은 더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넷째, 이 법은 의사들이 <조정·중재원>의 조정 등 절차에 참여해야 적용된다고 하면서, 이 경우 환자의 입증책임 부담을 경감하고, 충분한 보상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감언이설에 불과하다. 입증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는 현실에서, 조정·중재원의 의료 감정(형사 감정 및 조정 시 감정단의 감정)은 의료인의 과실을 제대로 판단하기는커녕 사실상 의사에게 면죄부 주는 창구로 이미 전락하고 말았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법이 도입될 경우, ”입증 문제, 보상체계 등이 피해자들이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 명약관화하다 할 것이다.
의사 수 증원, 의료인 책임보험 가입, 필수 의료를 위한 보호장치 강화는 의료인 형사면책과 무관하게 시행되어야 한다. 차제에 정부는 의료계의 요구에 편승하는 형사면책 입법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의료인 책임보험을 내실화하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하여야 한다. 의료정보의 투명한 개방 없이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바, 누가 봐도 명명백백한 객관적 감정이 가능하도록 현재 의료조정중재원 등에서 독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감정을 모든 의료기관 및 의료인에게 개방하고, 현재 환자에게 주어진 입증책임을 의료인에게로 전환하는 등 사회적 환경의 조성이 선행되어야 함을 천명한다.
2024. 03. 28 한국소비자단체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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