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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蘇東坡)의 동정춘색부(洞庭春色賦) 한잔!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떠 올리며 한잔 술

하태형 칼럼 | 기사입력 2011/07/06 [14:52]

소동파(蘇東坡)의 동정춘색부(洞庭春色賦) 한잔!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떠 올리며 한잔 술

하태형 칼럼 | 입력 : 2011/07/06 [14:52]
▲ 동파 소식의 발자취가 어린 소제의 풍경.
지난 시간 추양부(秋陽賦)를 소개드릴 때 안정군왕(安定郡王) 조영치(趙令畤)이란 인물이 등장하였습니다. 이 안정군왕(安定郡王)을 얘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것이 ‘동정춘색(洞庭春色)’이란 술이어서, 오늘은 이 술을 주제로 한 소동파의 <동정춘색부(洞庭春色賦)>를 소개드릴까 합니다.

중국의 동정호(洞庭湖)는 예로부터 황귤(黃柑)이 유명한 모양입니다.북송(北宋)당시, 안정군왕(安定郡王)은 이 황귤(黃柑)로 술을 담은 후,이 술에다가 ‘동정춘색(洞庭春色)’이란 매우 멋있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요즘도 이 술이 전해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그는 당시 이 술로 자주 연회를 즐겼고, 당연히 친분이 있던 소동파에게 이 술을 대접할 기회가 여러 번 있었을 것입니다.

대문호였던 소동파가 이 술을 주제로 쓴 글이 바로 <동정춘색부(洞庭春色賦)>로서,우리나라에서는 글 내용보다는 소동파가 쓴 행서체(行書體) 서예작품으로 더 유명하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글의 내용은, 그가 봄에 안정군왕(安定郡王)과 유람을 나갔다가 이 ‘동정춘색(洞庭春色)’이란 술을 대접받고 꿈을 꾸게 됩니다.꿈속에서, 옛날 춘추(春秋)시대 이 지역을 두고 ‘와신상담(臥薪嘗膽)’을 하면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중국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했던 전투를 벌인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오왕(吳王) 부차(夫差)를 떠 올립니다.

아울러, 월왕(越王) 구천(句踐)의 군사(軍師)였던 범려(范蠡)와, 그가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사용한
미인계의 주인공인 서시(西施)를 떠올리다가 잠에서 깬다는 내용입니다. 글 내용의 마지막 부분을 뽑아서 아래에 소개드립니다.

잔치가 벌어져 안정군왕(安定郡王) 술잔의 남은 술을 나누어 주니,주인의 인색하지 않음이 다만 다행일 따름이라. 잔 씻어 부어들고 일어나 맛을 즐기니,허리와 다리의 저림(痹頑)이 없어지는 듯.. 수중괴물인 신간(神奸)이 삼강(三江)을 한 호흡에 삼키듯,(잔을 비우고 취하여 잠이 드니) 취중에 꾸는 꿈이 몹시도 어지럽다. ....

서늘한 바람이 부는 소나무사이에 누우니, (사방이 조용하여) 봄 처마물이 똑똑 떨어져 졸졸 흐르는 소리 귀에 가득하다. 범려(范蠡)를 쫒으려 하나 아득히 멀도다.부차(夫差)의 홀로 죽음을 조문하고, 서시(西施)에게 잔을 권하니 망국(亡國)의 수심(愁心)이 얼굴에서 씻기는 듯 하구나.

문득 무희(舞姬)의 비단버선발 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춤사위가 끝나서 무희(舞姬)의 소매가 아름다운
곡선을 접는 도다. 술이 깬뒤 부(賦)를 지어 공자(公子)에게 주며 말하길 “오호라, 말이 지나치니, 공자(公子)께서 나를 위해 지나친 부분을 고쳐 주시오”라고 하였다.

(分帝觴之餘瀝,幸公子之破慳。我洗盞而起嘗,散腰足之痹頑。盡三江於一吸,吞魚龍之神奸,醉夢紛紜,.... 臥松風之瑟縮,揭春溜之淙潺,追范蠡於渺茫,吊夫差之惸鰥,屬此觴於西子,洗亡國之愁顏。
驚羅襪之塵飛,失舞袖之弓彎。覺而賦之,以授公子曰:烏乎噫嘻:吾言誇矣:公子其為我刪之)

이 시(詩)는 소동파의 말기작품으로,그의 문장력이 적벽부(赤壁賦)를 지을 때인 전성기에 비해서는 많이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하지만, 이 시(詩)에서 그가 마침내 술에 취한 꿈을 깬다는 부분을 묘사한 ‘驚羅襪之塵飛(경나말지진비),失舞袖之弓彎(실무수지궁만)’의 이 구절은 정녕 탄복을 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먼저 ‘羅襪(나말)’란 단어는 무희(舞姬)들의 ‘비단버선’을 말하며, ‘塵飛(진비)’는 무희(舞姬)들의 발동작이 일으키는 먼지(塵)를 뜻합니다.연회석상의 춤사위가 막바지에 달하면 무희들의 춤동작이 최고도에 달하기 마련입니다.술이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던 소동파입장에서는, 최고조에 달한 무희들의 ‘비단버선’들이 일으키는 먼지(塵飛), 또는 그 소리에 놀라 잠을 깬다는 표현을 ‘驚羅襪之塵飛(경나말지진비)’로 하고 있습니다.

잠을 깨보니, 안타깝게도 벌써 무희(舞姬)들의 춤사위가 끝나버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무희(舞姬)들이 춤을 출 때 팔을 활짝 펼치면 무희(舞姬)들의 팔소매(舞袖(무수))가 활처럼 아름답게 굽어져(弓彎(궁만)) 드리우게 됩니다.

하지만, 춤이 끝나버려 무희(舞姬)들이 팔을 접게 되니, 이 팔소매(舞袖(무수))가 만드는 아름다운 곡선인
‘弓彎(궁만)’이 사라지게(失) 되는 법,따라서 ‘失舞袖之弓彎(실무수지궁만)’이란 표현으로 ‘꿈에서 문득 깨니 이미 무희(舞姬)들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끝나버렸다’는 안타까움을 기막히게 표현해 내고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멋있는 한문표현중 하나입니다.
<하태형/서예평론가/(주)소너지 대표이사/서울대 경영학과 졸/경제학 박사(뉴욕 주립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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