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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붕괴되는 '초현실적'인 미국의 오늘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6/04 [10:57]

서서히 붕괴되는 '초현실적'인 미국의 오늘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6/04 [10:57]



헬기 소리가 꽤 커다랗게 들리는 건, 비행기들이 별로 다니지 않는 까닭도 있겠지만, 일단 평소보다 하늘에 헬기가 많이 떴다는 이야기겠지요. 워싱턴 DC처럼 블랙 호크가 뜬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시애틀도 이번주 토요일까지 다운타운 일원에 오후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통금령이 내려져 있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무장군인들이 진주하고 오후 6시부터 통금이 발효하는 LA와는 또 다르지요. 그리고 시애틀 일원에 출동한 주방위군은 총기로 무장하지 않고 곤봉 등으로 경무장하고 있는 것이 다른 곳과는 좀 다르긴 합니다.

시위는 확산 일로에 있는 것 같습니다. 게다가 트럼프가 시위대가 약탈 행위를 할 경우 사격을 하겠다는 발언을 한 것이 시민들을 더 화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어느 지역이나 약탈이 벌어진 경우엔 그 지역 사람이 아니라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이 들어와 폭력을 조장한다는 증거들이 속속 드러나며 시민들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잖아도 코로나 19 때문에 처진 경제가 이 일로 인해 더욱 바닥으로 가고 있는 상황. 또 시위로 인해 코로나바이러스가 확산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전문가의 의견들이 나오면서 미국의 분위기는 9.11 이후나 서브프라임 때와는 완전히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도심에 통금이 떨어진 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암살 이후 처음이라고 하는군요.

제가 사는 워싱턴주의 경우 그저께인 6월 1일부터 지역에 따라 조금씩 2단계 정상화 조치가 시작되기 시작했습니다만, 아마 시애틀 다운타운과 그 일대의 경우 아무래도 7월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의미의 '정상화'는 어려울 듯 합니다. 그리고 설사 정상화가 된들, 아직도 하루에 2만건 이상 발생하는 신규 케이스를 볼 때 바이러스의 확산은 불보듯 뻔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자연스런 시위의 격화 역시 코로나 확산을 더욱 부추기겠지요.

로마 제국의 멸망은 외침에 의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부로부터 시작된 것이었지요. 현대의 제국이 조금씩 붕괴되고 있는 모습이 느껴집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 중 과거의 미국을 기억하는 이들은 지금의 상황을 초현실적 surreal 이라고 말합니다. 하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것 자체가 초현실적인 일이긴 했지요.

사진들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선배 형님이 찍어 보내준 겁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참 많은 게 겹쳐 떠오릅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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