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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눈 뜨고 출근준비하다보니 휴일이었다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7/05 [11:12]

아침, 눈 뜨고 출근준비하다보니 휴일이었다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7/05 [11:12]



평소대로 눈을 뜨니 새벽 다섯 시 조금 넘은 시간, 아직 다 온 몸 구석구석이 확실히 깨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욕실로 향했고, 샤워 드로워를 열고 물을 켜 물 온도를 맞추고 온 몸을 씻었습니다. 무슨 꿈을 그리도 많이 꿨는지, 그 꿈의 여파였는지 땀이 많이 흐른 것 같았고, 그 불쾌감 때문에라도 샤워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이제 얼른 일을 가야지 생각하며 온 몸에 비누칠을 하고 씻어내고 머리를 감으며 제 정신이 확실하게 돌아오는 순간, 저는 그제서야 깨달았습니다.

아, 젠장, 오늘 7월 4일이다.

독립기념일. 미국에 며칠 없는 날짜가 딱 정해진 휴일입니다. 보통 미국에서 공휴일로 지정된 날들 중 날짜가 딱 정해진 날은 신년을 맞는 1월 1일과 성탄절인 12월 25일, 그리고 지호의 생일이기도 한 베터런스 데이(재향군인의 날)로 정해진11월 11일. 이 날은 이게 1차대전 종전기념일이어서 그렇다지요. 그리고 독립기념일인 7월 4일, 이렇게 네 개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몇 월의 몇 번째 주 월요일... 하는 식으로 날짜가 딱 특정돼 있진 않지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엉뚱하게 휴일을 맞았고, 일어나자마자 컴퓨터를 켰습니다. 이런 날은 아침에 동네 한 바퀴를 달리든지 팔굽혀펴기를 하든지 하며 몸에 시동을 거는 것이 좋을텐데, 저는 이것저것 줏어 먹으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찻물을 올렸지요. 집에 아이들이 학교 근처 아파트에 살 때 썼던 큐릭 캡슐커피 머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커피를 마신다든지 차를 마신다든지 할 때는 물을 끓여 우려내는 게 더 좋습니다.

특히 홍차를 마시고 싶을 때는 물을 끓여 우려내는 것이 맛이 훨씬 낫지요. 코웨이 정수기의 뜨거운 물 온도 정도로는 홍차가 완전히 우러나지 않습니다. 물을 팔팔 끓여 붓고, 여기에 티백을 넣어야지요. 정수기에서 나오는 뜨거운 물에선 티백이 처음에 완전히 가라앉지 않아, 그걸 들고선 넣었다 뺐다는 몇 번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팔팔 끓인 물에 티백을 넣으면 그것이 가라앉는 것이 보이지요. 물론 루즈 티를 마시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도 찻물은 팔팔 끓여 넣어야 제 맛이 우러나더군요.

우리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요. 무엇인가 미칠 때엔 마음을 끓여 봐야지요. 내 삶에서 정말 내 마음을 팔팔 끓는 물처럼 끓여본 것이 얼마나 될까를 생각해 봅니다. 물론, 그 끓는 물에 우려낸 차도 오랫동안 마시지 않고 두면 식습니다.

너무 뜨겁게, 그렇게 끓었던 물에 바로 우려낸 그 차를 입에 바로 대면 당연히 데지요. 조금은 식혀 줘야 합니다. 내가 살면서 사고를 쳤던 순간들을 생각해 보면 바로 그렇게 끓여 댄 마음으로 해 댔던 행동들이 마치 뜨거운 차가 되어 내 입안을 데도록 만들었던 그런 순간들이기도 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 뜨거움을 한 소끔 줄이고, 내 자신을 돌아보듯 약간 후후 불고, 너무 식지 않은 순간에 조금씩 조금씩 찻잔을 들어 그 차를 음미하는 걸 우리는 지혜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마음을 끓일 수 있는 화원(火原)은 젊음이겠지요. 집안에 젊은 아이들이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갇혀 자기들이 가진 것들을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어렸을 때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풋 웃음이 나올 때가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식혀주는 지혜를 가르쳐줘야 하는데, 아빠는 그냥 그 아이들이 내뿜는 젊음의 불길들이 마냥 좋을 때들이 있어서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그 불길을 꽤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끓였던 마음을 갖고 시작했던 것들 중 하나가 와인이었던 것 같고. 지금의 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많은 것들이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아이들을 집에서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난 지금, 애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오래전 저를 봅니다.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즐겁기도 합니다. 게임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다가 푸슷 웃음이 나옵니다. 술 한 잔 하고 싶다는 아이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오늘 밤엔 좀 진한 놈으로, 진하게 한 잔 할까 합니다.

차가 따끈하니 마시기 좋네요. 조금 식었지만 가장 맛있을 온도. 쉬는 날의 아침을 이리 시작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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