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신년기자회견 대신 KBS에서 특별 대답을 했는데, 진행자인 박장범 앵커가 “김건희 여사가 최 목사로부터 ‘아주 쬐그마한 외국산 가방’을 받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고 물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이 바로 박장범 앵커가 표현한 ‘아주 쬐그마한 외국산 가방’이다.
사전에 대통령실과 교감했는지 박장범 앵커는 ‘명품’이나 ‘디올백’이란 말을 하지 못하고, ‘아주 쬐그마한 외국산 가방’이라 말함으로써 명품 수수의 의미를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자 KBS 노조가 나서 “KBS 역사상 가장 치욕의 날‘이라고 혹평했다.
명품을 명품이라 말하지 못한 박장범 앵커의 심정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건 마치 아버지를 아버지라 하지 못한 홍길동이 떠올라 씁쓸했다. 그렇게 하면 혹시 나중에 대통실로부터 부름이라도 받을 거라고 여긴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르겠다.
윤석열의 대답은 더욱 가관이었다. 윤석열은 박장범 앵커의 질문에 “최 목사가 아내 부친과의 인연을 강조하며 자꾸만 접근하자 마음이 약해 박절하게 대할 수 없었다”라고 둘러댔다. 국민들이 기대했던 사과는커녕 김건희의 마음이 다정하다며 옹호한 것이다.
네티즌들 조롱 댓글 봇물
그러자 네티즌들이 관련 기사에 댓글을 달았는데, 대표적인 것 몇 개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그렇게 마음이 고운데 이태원 참사 유족은 왜 안 만나 주고, 특별법은 왜 거부했지?” “그렇게 마음이 약한데, 어떻게 과감하게 박사 논문을 표절하고 20개가 넘은 학력 및 경력을 위조했지?” “요즘은 주가조작도 마음이 약하고 부부가 다정해야 하는 모양이지?” “아주 쬐그마한 외국산 가방? 디올 회사 회장이 울고 가겠다.”
다정도 병인 양하여
관련 영상을 본 후 문득 떠오른 시조 한 편이 있었다. 고려 후기 이조년이 쓴 시조인데, 중고등학교 때 국어 수업을 들은 사람들은 아마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선 시조를 감상해 보자.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 제 일지 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이때 이화는 배꽃, 월백은 하얀 달, 은한은 하얀 별로 은하수다. 셋 모두 하얀 색으로 시각적 이미지가 두드러진다. ‘일지춘심’은 나뭇가지에 어린 봄의 정서로, 시적 화자는 나뭇가지에 '봄의 마음'이 어려 있다고 본 것이다. ‘자규’는 두견새로 한의 상징이다. 봄밤에 느끼는 애상감을 이토록 잘 표현한 시조도 드물 것이다.
필자가 유독 떠올린 부분은 시조의 종장으로, ‘다정도 병인 양하여 잠 못 들어 하노라.’ 부분이다. 이 말의 원래 뜻은 ‘생각이 많은 것도 병이다’라는 자조적인 표현이다. 즉 마음이 다정한 것도 병이란 뜻이다. 이것을 윤석열이 한 말로 치환하면,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윈 아내가 정이 많아 찾아오는 사람을 박절하게 대하지 못한다”라는 뜻이 될 것이다.
동정심에 호소하는 오류
윤석열의 말인즉, 명품을 받고 싶어서 받은 게 아니라, 김건희의 마음이 약하고 다정하여 명품을 거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거기에 일찍 여윈 아버지가 나올까? 이런 걸 논리학에서 ‘동정심에 호소하는 오류’라고 한다. 그리고 아버지를 일찍 여윈다고 다 마음이 약해지고 다정해지는 것인가?
윤석열은 이어서 김건희가 디올백을 받은 것에 대해 “몰카를 사용한 정치 공작이다” 라고 말했다. 이는 국힘당의 주장과 같다. 그러나 윤석열의 이 말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법정에 가도 깨지게 되어 있다.
(1) 최 목사는 김건희를 방문하기 전에 미리 선물목록을 사진을 찍어 보냈고, 그때마다 김건희가 만나자는 문자를 보냈다. 세상에 정치공작을 하는데 미리 말리고 선물목록을 보낸 경우도 있는가?
(2) 김건희는 최 목사와 대화 중 “네? 금융위로 보내주라고요?” 하고 말해 인사에도 개입했으며, “제가 앞으로 남북 일에도 나설 테니 목사님도 저와 함께 큰일 하셔야죠?” 한 것으로 봐 국정에도 개입했다.
(3) 최 목사가 방문을 마치고 나올 때 복도에선 다른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이것은 방문자가 많다는 뜻이며, 김건희가 다른 선물도 많이 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4) 대통령실은 최 목사가 준 가방이 ‘반환창고’에 보관되어 있다고 둘러댔으나, 대통령실 건물에는 반환창고는 없다는 게 중론이다. 오히려 선물이 얼마나 많으면 창고까지 있을까, 하는 의혹만 커졌다.
윤석열 부부에게 보내는 시조
윤석열의 일방적인 변명만 늘어놓은 KBS 방송은 ‘특별대담’이 아니라 ‘대담’하게 꾸며진 ‘쇼’라고 해야 옳다. 혹은 대담을 가장한 ‘인생극장’ 쯤 될 것이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묻지도 못하고 답하지도 못한 이번 대담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그런 윤석열 부부에게 시조 한 수 보낸다.
반지면 어떠하리 가방이면 어떠하리 용와대 반환창고 비워지면 허전하니 다정도 병인 양하여 디올백 받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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