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약자로, 3급 이상 공무원 등의 직무 관련 범죄에 대해 수사, 공소 제기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수사기관이다. 공수처는 중앙행정기관이면서도 대통령 등의 구체적인 지휘 ・ 감독을 받지 않는 독립기관에 해당한다. 그러나 공수처장은 여야의 추천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므로 사실상 대통령 직속 기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해병대 수사 개입이 드러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이 호주대사로 임명되고 몰래 출국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되자 윤석열 정권은 공수처를 물고 늘어졌다. 정부가 또 다른 정부 기관을 물고 늘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비록 공수처가 문재인 정부 때 설립되긴 했지만, 지금은 윤석열 정권이 아닌가. 따라서 이것은 전형적인 ‘유체이탈화법’이라 하겠다.
엉뚱하게 공수처 물고 늘어진 대통령실
피의자인 이종섭이 출국금지가 되어 있는데도 이를 하루 만에 풀고 호주로 출국해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자, 대통령실은 엉뚱하게 “공수처가 그간 이종섭 전 장관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공수처가 독립된 기관이라면 어떻게 대통령실이 공수처가 이종섭에 대해 조사를 안 했는지는 알고 있을까?
초대 공수처장이 임기가 다 되어 나갔는데도 윤석열은 새로운 공수처장을 아직도 임명하지 않고 있다. 김건희 명품수수 사건이 터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이종섭을 조사하지 않았다고 둘러댄 것이다. 공수처장이 부재하니 그 부하들도 어떻게 운신해야 할지 애매한 것은 사실이다.
피의자 출국금지가 수사권 남용?
대통령실은 공수처가 이종섭을 출국금지 조치한 것을 “수사권 남용”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공수처가 범죄 피의자를 출국금지시킨 것은 고유의 권한이다. 오히려 출국금지를 하지 않은 게 더 이상한 것이다. 대통령실은 야당이 이종섭 출국을 수사 회피용 도피라 비판하자 “말도 안 되는 억지”라고 반박했다. 대통령실이 공수처장 임명권자인 윤석열에게 비판이 향하자 공수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실 안보실장은 “야당이 이 수사와 조사에 정말 진심이라면 6~7개월 간 아예 조사를 안 한 공수처부터 문제 삼아야 한다”며 “조사 안 한 데는 내버려두고 왜 조사받겠다는 사람을 문제 삼나.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그러나 공수처가 윤석열 정권의 기관이란 점에서 이런 식의 반박은 적반하장이라 하겠다.
임명 철회 절대 없다?
야당이 이종섭의 출국이 수사 회피용이라 공격하자 안보실장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이고 앞뒤가 안 맞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 실장은 수사 회피용이라면 아그레망(주재국 부임 동의)이 필요 없는 총영사나 국제기구로 보냈을 거라는 취지로 설명했다. 임명 철회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일갈했다.
공수처장을 임명하는 사람은 대통령인데, 안보실장이 대신 나와 쉴드를 쳐준 것은 그가 윤석열로부터 그렇게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방증이다. 안보실장에게 지시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윤석열밖에 없기 때문이다.
공수처와 야당과 좌판 언론이 꾸민 정치공작?
대통령실은 이번 사건을 “공수처와 야당과 좌판 언론이 꾸민 정치공작이”라고 했는데, 그 근거가 뭔가? 윤석열 정권에 있는 공수처가 야당과 야당 편을 드는 언론과 짜고 정치 공작을 했다는 게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이건 마치 아들이 조폭과 짜고 아버지를 죽이려 했다는 말과 같다.
그리고 과연 대통령실이 정치 공작이란 말을 할 자격이 있을까? 김건희 주가조작도 정치 공작이고, 명품수수도 정치 공작인가? 야당은 돈 봉투 부스럭거리는 소리 하나 가지고 정치 생명을 끊어 놓으면서 돈 봉투를 직접 받은 정우택은 왜 공천했다가 나중에 취소했는가? 그것도 나중에 회유 문자가 공개되자 공천을 취소한 게 아닌가.
피의사실 공표는 수구들의 전공이 아닌가?
국힘당은 “공수처만 알 수 있는 수사 내용이 언론을 통해 노출되고 있다”면서 “공수처가 수사 기밀들을 불법적으로 유출하고 있다는 명백한 정황이며, 공수처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반드시 밝혀져야 할 중대한 사안”이라고 국정조사를 요구했다.
그런 국힘당에 묻자, 검찰만이 알고 있을 대장동 사건 자료, 조국 가족 수사 자료, 이재명 대표 수사 자료는 누가 왜 공개했는가? 그때 국힘당은 무슨 비판을 한 적이 있는가? 이런 거야말로 전형적인 ‘윤로남불’이 아닌가?
또 다른 입틀막, 총선 때 응징
이종섭 호주대사 부임을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가열되고 있지만, 윤석열은 이종섭 대사 임명 철회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종섭이 공수처의 수사를 받을 경우 이실직고 하면 탄핵의 기제가 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이종섭의 출국은 또 다른 ‘입틀막 사건’이라 하겠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태를 두고 야당이 무리하게 '해외 도피 프레임'을 씌워 공세를 펴고 있고, 이런 와중에 임명을 철회하면 야당의 전략에 말리는 꼴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왜 국힘당 내에서도 이종섭 출국에 비판하는 사람이 많을까? 거기에다 5.18 비하, 친일 발언, ‘난교 옹호’까지 드러났으니 누가 국힘당 후보를 찍고 싶겠는가? 최근 여론이 변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국힘당은 이번 사건으로 총선을 말아먹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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