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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국공 정규직 전환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모순들

권종상 논설위원 | 기사입력 2020/07/01 [12:04]

인국공 정규직 전환 둘러싼 논란이 보여주는 한국사회의 모순들

권종상 논설위원 | 입력 : 2020/07/01 [12:04]



이른바 인천국제공항 직원 정규직 전환 사태를 바라보며 여러가지로 착잡한 것을 느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이 관련뉴스의 최초 원인이 됐던 단톡방의 메시지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촉발된 것들은 우리나라에서 꼭 짚고 고쳐나가야 할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저 때만 해도 대학만 졸업하면 직장 잡는 건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1990년에 미국에 왔고, IMF 사태가 터졌을 때는 일간지 신문 기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한국 경제가 어떤 식으로 망가져 가는가를 떨어져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사회는 참으로 잔인한 것이었습니다. 이른바 '비정규직'이란 것이 생겼고, 해고가 쉬워졌으며, 직장이 고용한 사람들을 챙겨주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었던 문화들이 무너지는 것을 봤습니다. 사람의 값어치가 떨어지고, 사회 자체가 내 주위의 사람들을 짓밟고서 자기만 살아남는 것을 매우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게 '매우 당연한' 그런 가치관들이 형성됐습니다.

여기에 교육은 더 잔인해졌습니다. 절대평가가 상대평가로 바뀌며 내 옆자리의 친구가 경쟁자로 바뀌며 필기 노트까지도 보여주지 않으려 하는 '나 혼자 살자'의 문화가 지배적인 것이 됐습니다. 그리고 쓸데없는 스펙쌓기로 개인과 사회적 자본들이 낭비되고, 이른바 '자기개발'을 할 수 없는 이들은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을 매우 당연히 여기는 그런 풍토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데서 파생되는 스트레스는 약해 보이는 타자에 대한 공격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본의 이지메보다 더 한 왕따 문화, 집단따돌림 같은 건 이런 교육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결과였을겁니다. 경쟁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늘 스트레스였을테니.

사실 이런 사회적 구도 안에서 박근혜 탄핵이란 역사적인 일을 이뤄낸 것도, 적지 않은 건 뭔가 이 불공정한 사회구조 때문에 받고 있는 사회적 핍박에 저항한 측면도 없지 않을 겁니다. 이미 불공정이 정착된 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분노하고 있었던 거지요.

아무튼,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사태는 이 밖에도 여러가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국의 학벌 현상의 모순("서연고 나오면 뭐하냐..." 운운하는 말에서부터), 그리고 그것을 심지어는 매우 당연한 것으로 체득해 버린 대중들의 심리적 모순. 그리고 이런 우리 사회의 약한 면을 자극해 정쟁의 거리로 만들려 하는 세력들의 준동이라는 현실, 무엇보다 이런 가짜 뉴스를 이용해 어떻게든 노동자들간의 싸움을 부추기고, 갈라치기를 통해 자기들이 만들어 놓은 지배구조를 더욱 단단히 하려는 앙시앙 레짐의 지배계층, 여기에 기생해 이 사건을 계속해 부풀려 정치적 욕망을 달성하려 하는 언론과 정당, 그리고 이를 부추기는 세력들의 존재까지도.

한국이 앞으로 제대로 나가려면 어렵고 험한 일엔 임금을 더 지불하고 그들의 복지를 챙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자리잡아야 할 겁니다. 그러려면 지금의 학벌로 이뤄진 특권층이 누리는 혜택도 과감히 없애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선 학벌을 없애야 하고, 지금의 입시 위주의 교육도 사라져야 합니다. 저는 정규직 공무원입니다만, 제가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은 90일동안의 프로베이션 기간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으로서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파트타임 정규직에서 풀타임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건 1년 2개월 정도 걸렸지요. 연봉은 먹고 살기 충분할 만큼 됩니다. 여기에 충분한 복지혜택이 주어지지요. 1년에 6주 정도 보장되는 휴가라던지, 지금까지 9백시간 정도 쌓여 있는 병가 같은 것들입니다.

어떤 직장에서 일하던간에 그 직업이 존중받는 건 급여와 복지혜택 때문일수도 있지만, 그 사회가 사람들이 가진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런 면에서도, 우리에게 같은 일을 하는 이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고, 그 '스테이터스'가 몇 년 이상, 심지어는 20년, 30년 간다는 건 사회적으로 모순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건 바로 이런 현실인 겁니다. 누가 정규직이 된다는 것에 대해 확인도 되지 않은 사실에 분노해 청와대에 청원까지 넣는 그런 질시의 감정이 아니라, 사회를 제대로, 일 하는 이들이 모두가 존중되어야 하고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의 형성입니다. 정치는 그래서 존재하는 것이구요.

기업들이 어렵게 되지 않느냐는 물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업들이 이른바 사내유보금이란 형태로 쌓아놓고 풀지 않는 돈들, 어차피 대규모 투자를 하지 않으려면 비정규직 없애고 더 많은 인재들을 뽑아 적재적소에 충분히 배치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사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 교육은 변해야 하고, 사람들의 숨은 재능을 찾아내 개발해 주는 것이 교육이어야 하지요. 그리고 그렇게 서로 사회적 연대와 공감을 나누는 사회, 그것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사회적 목표가 됐으면 합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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